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2020년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률이 전년 동기 대비 43% 급증했고, 같은 기간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 20대 여성이 32.1%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청년여성은 왜 삶을 등지려고 했을까요? 이러한 수치 뒤에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이소진 연구자의 분석입니다.
"자살생각은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불합리를 인식한 서발턴들의 조용한 외침이다."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의 저자 이소진 연구자의 이 한 문장은 우리 사회가 청년여성의 절망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뒤바꿉니다. 이번 기고에서 이소진 연구자는 청년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불안감, 낭패감, 압박감을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노동시장의 속도 경쟁,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여초직업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저임금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경제적 불안정까지. 능력주의를 맹신하며 "더 노력하라"고 외치는 사회가 만든 생존 게임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삶을 등지려는 이들의 가장 조용한 외침을 치밀하게 추적합니다.
자살생각과 친연하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살생각이 나약함과 어떤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다고 짐작한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 고통이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자살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생각은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나만이 힘들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자살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연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여성들이 가족과 노동의 문제들 사이에 끼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단 나의 경험 때문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에는 청년여성들이 호소하는 괴로움의 글들이 매일같이 업로드되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자살연구를 책으로 펴낸 후 이에 대한 강연을 할 때면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 있다. 너무 자극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지나친 일반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다. 그러한 질문에는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람보다는 믿기 싫다는 불쾌감이 묻어있다.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소비될 법한 이야기들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줄곧 나는 그런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 이러한 분석이 ‘지나친 일반화’라는 비난을 받았을 때는 좀 어이가 없었다.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저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놀랐다. 어떤 사람은 ‘남성도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안다. 나는 청년여성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을 뿐, 남성이 고통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산격차가 증대되고 노동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청년은 성별을 불문하고 삶이 힘들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청년여성을 중심으로 하되, 청년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이 글의 바탕이 된 연구는 나의 박사학위논문으로, 나는 대한민국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는 노동세계와 금융투자를 이해하기 위해 웹디자이너 및 웹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50여명의 청년과 만났다. 해당 인터뷰를 바탕으로, 나는 자살생각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위치하는 감정인 불안감, 낭패감, 압박감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청년여성의 경험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리고 덧붙여 청년남성의 삶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청년’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청년을 의미한다. 성별이 중요한 지점에서는 ‘청년여성’이나 ‘청년남성’과 같은 성별화된 지칭을 사용했다.
자살생각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경제적 안전망이 부재하다고 느끼는 청년여성에게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감정은 일상적이다. 여성들은 임금노동을 수행하면서 비관을 학습한다. 이러한 경향은 소위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여초직업에서 뚜렷하게 관찰된다.
이러한 직업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 젊은 여성들이 주로 일하는 직업으로 소위 ‘커리어’가 존재한다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많아지면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일자리. 둘째, 나이와 관계없이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중년여성이 주로 하게 되는) 주로 돌봄과 관련된 저임금 일자리.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아이를 낳으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최근의 청년여성들은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온전한 노동자로서 삶을 지속하기를 원한다.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유망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임금노동시장에 진입한 이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매일같이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디자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웹디자인 일을 시작한 2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벌써부터 일자리를 잃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다. 웹디자이너의 경우, 연차가 지나치게 높으면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기보다는 감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그녀는 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머지않아 그녀에게 도래될 것이라고 보았다.
웹디자인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3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요양보호사나 어린이집 교사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한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8년 차 웹디자이너인 그녀는 인터뷰 당시 이전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해 실직상태였는데, 과거와 달리 이직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그녀의 커리어가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직업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안은 돌봄과 관련된 일자리뿐이었다. 임금은 낮고, 노동강도는 높지만, 필수직군이기 때문에 실업자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직업들.
더욱 슬픈 것은 이러한 탈락, 실패, 뒤쳐짐이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기댈 거라곤 능력주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들은 유망한 커리어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기술을 따라잡고, 다양한 사람들의 작업물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디자인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직도 자주 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을 자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6개월에서 2년 사이의 간격으로 일터를 이동하면서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적응력과 다양성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착취했다.
이러한 경험은 소위 ‘전문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직업을 지닌 청년이라면 누구든 겪게 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이후부터 줄곧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와 소위 잘 팔릴 것 같은, 즉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연구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심해 왔다. 유망한 커리어란, 희소하면서도 너무 특이하지 않은 것이어야 했다. 독특하면서도 범용성이 있어야 했다. 여기에 더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연구방법의 기술목록도 늘려야 했다. 많은 선배들은 내게 항상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질적연구만으로는 부족해. 양방이든 빅데이터든 할 수 있어야 살아남는다고. 어떻게든 박사논문에 네가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야 해.” 그래서 빅데이터 분석기법을 배워 연구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얼마 전 세미나가 끝난 후 나는 다시 한번 ‘그건 너무나 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토픽모델링을 접목시킨 건 아주 잘한 일이야. 하지만 그건 이제 아무나 다 하잖아. 이제 다른 연구 분야를 접목시켜야 해. 청년노동 말고, 새로운 거. 이를테면 동물권이라던가.”
나는 항상 내가 어떻게 하면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람들을 흥미롭게 만들면서도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야 한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속도다. 너무 빠르거나 느린 속도는 어떤 의심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 이렇게 속도가 빠르다니 이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나? 혹은 이 친구는 작업이 느린가? 놀았나? 그래서 함께 일하면 불편할 수 있나? 나는 그러한 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유망하고 진정성 있는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내가 만난 청년들 역시 나와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한 웹디자이너는 선배에게서 퍼블리싱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퍼블리싱은 웹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을 실제 웹환경에서 구현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시각적 요소를 코드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프로그래밍의 일환으로 본다. 하지만 그녀는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웹디자이너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밍을 정말 배워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그럴 거면 개발자를 했지 디자인을 왜 했나’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지속적인 학습에 대한 압박은 새로운 기술이 자주 등장하는 공간에서 더욱 심화된다. 특히 코로나시기 공급부족 현상의 틈을 타 단기간의 직업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된 개발자들은 이러한 고충을 토로했다.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에 대한 숙련도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들은 매일같이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의 더미 속에서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지, 지금 이 기술을 배우는 게 유망한지,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혹은 사장될 기술을 배우는 것은 아닌지 타진해야 했다. 동시에 무엇을 배울지 선택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고려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