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카카오톡에 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할 때 설명 글을 추가하는 기능이 생겼어요. 시각 장애인의 미디어 콘텐츠 이해를 돕는 기능입니다. 누가 이런 시도를 구상할까요? 카카오의 디지털접근성책임자(DAO)인 김혜일 님은 중학교 때 시력의 상당 부분을 잃은 저시력자입니다. 컴퓨터를 좋아하다가 정보 접근성 전문가로 일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약 10년 이상 활동 중입니다. 정보 접근성은 모든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 디지털 접근성은 모든 사람이 디지털 제품/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 정의할 수 있어요. 김혜일 님에게 정보 혹은 디지털 접근을 쉽게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 디지털접근성책임자(DAO, Digital Accessibility Office)의 역할은 무엇인가?
카카오의 디지털 제품 개발 접근성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한다. 다양한 협업자를 연결할 수 있도록 사내 정책과 체계를 수립하며, 접근성 관련 요청과 우려사항을 해결한다.
| 해외에서는 DAO란 직책이 일반적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전체 제품군의 접근성을 관리/감독하는 최고접근성책임자(CAO)라는 직책이 있다. 해외는 접근성 전문 조직, 서비스를 검증하는 조직, 실제 개발 단계에서 지원하는 조직 등 접근성 관련 조직이 다양하게 세분화 되어있다.
| DAO로 근무하며 어떤 변화가 있나?
나의 역할에 많은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접근성 품질을 검증하는 역할에 가까웠다. 그 때는 제품 출시 직전에 품질테스트를 하거나, 고객 지원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여 접근성을 고려하고, 접근성 향상을 위한 부서 간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카카오 이모티콘은 대표적인 개선 사례다. 이모티콘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 도구다. 이모티콘을 이해하지 못하면 커뮤니케이션에 차질이 생긴다. 카카오톡 초기에는 기본 이모티콘에만 대체 텍스트*를 제공했으나, 현재는 모든 이모티콘에 대체 텍스트 기능을 추가했다. 최근에는 사진, 동영상 전송 시 설명 텍스트를 사용자가 추가할 수 있는 기능도 도입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장애인 사용자를 고려하여 개선했지만 결국 모든 사용자의 사용성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모티콘 대체 텍스트는 이모티콘 추천 시스템에서 활용된다(보내려는 카톡에 자동으로 적합한 이모티콘을 추천하고, 톡 내용을 선택하면 랜덤 추천 역시 가능). 사진/동영상 전송 시 사용자가 입력하는 설명 텍스트는 사진/동영상 검색에서도 활용된다.
*대체 텍스트: 콘텐츠에 대한 의미/용도를 알 수 있도록 이미지 내용을 음성 정보로 대체해 알려주는 기능
| 부서별, 개인별로 접근성 이해·활용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 가치를 공유하고, 내재화하나?
우선, 입사 온보딩 과정에 접근성 교육을 포함한다. 우리 조직은 접근성을 고려하여 제품을 개발한다고 교육한다. 각 서비스 부서와는 공감대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의도와 달리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다. 물론 부서 실무에 접근성을 반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 디지털 접근성이 왜 중요한가?
과거에는 디지털 기술을 몰라도 생활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 못 하면 생활에 문제가 발생한다. 공공요금 지급, 명세서 확인, 교통 예약, 음식 주문, 금융서비스 등 일상이 디지털에서 이뤄진다. 디지털 접근성은 편의성의 문제가 아닌 삶의 기본권과 관계된 문제가 되었다.
디지털은 장애인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 대형 쇼핑몰 이용이 극도로 어려운 시각장애인도 편하게 집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받을 수 있다. 오프라인 커뮤니티 참여가 어려운 장애인도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나 SNS 커뮤니케이션에는 제약이 없다. 디지털 환경에서 장애인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 접근 불가한 경우에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이 업무 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 스스로 휴가조차 제출하지 못한다. 작업지시, 접수, 보고 등의 기초 업무를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생산적 역할을 할 수 있나. 디지털 환경에 소외됨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장애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 디지털 접근성에 관한 흔한 오해나 문제는?
장애인은 제품의 사용자 관점에서 작은 규모일까? 국내 장애인 수는 약 260만 명이다. 대구시 인구가 약 240만 명, 경상북도는 약 265만 명이다. 절대 작지 않다. 경상북도민 혹은 대구시민을 고려하지 않고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운영하는 경우가 있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용자다.
접근성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일까? 장애인의 요구로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누가 이용하고 있나? 노인, 무거운 짐을 든 비장애인들로 가득하다. 장애인을 위해서 만들었지만, 결국 모든 시민이 이용한다. 아이폰의 ‘손쉬운 사용’은 장애인의 필요에 맞춰 개발했지만, 비장애인도 Assistive Touch 기능을 활용해 한 번의 탭으로 편하게 화면캡쳐나 결재를 한다. 전화 수신 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는 기능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용도였으나, 전화를 자주 놓치는 비장애인도 회의 시간 등 특수한 상황에서 이용한다. 또, 카카오톡에는 저시력자를 위한 ‘고대비 테마’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은 스마트폰 화면 밝기를 낮추고 싶은 비장애인에게도 인기가 있다. ‘밤에 침대에서 불 끄고 카톡하기 좋다’ 등의 반응이 들려온다. 음성 ARS 인증이 힘든 청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에 인증번호가 표시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러나 비장애인도 이 기능을 활용한다. ‘회의 시간에 인증할 수 있었다’, ‘급할 때 귀를 안 대고도 인증할 수 있어 좋았다’ 등의 후기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폐쇄형 자막(CC)*도 마찬가지다. 대사, 음악, 효과음 등의 모든 소리를 활자화하면 비장애인도 입체적으로 콘텐츠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접근 가능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큰 비용이 들까? 물론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처음부터 디지털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이 성숙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발/서비스 관련 부서의 직원이 접근성을 체득하고, 초기 기획/개발부터 반영한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폐쇄형 자막은 콘텐츠 내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표기함
| 장애인의 권리/편익을 위한 활동도 병행했다. 직업인으로서의 김혜일과 활동가로서의 김혜일은 무엇이 다른가?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접근 가능 환경을 만들 수 있어서다. 카카오 서비스의 접근성을 조금만 개선하면 수백만 명의 장애인 사용자가 혜택을 받는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많은 장애 요소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정확하게 어려움을 알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한편 접근성 전문가로서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슈를 판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누군가는 당사자 입장에서 주장하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냐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니 당사자인 나와 직업인 나 사이에 끊임없이 합의하고 중재하며, 때로는 갈등을 겪는다.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업무 추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사자로서의 내가 만족할 수 없는 선택을 할 때도 있다. 물론 당사자성이 장점으로 발휘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양면성을 항상 고민한다.
활동가로서 내 일상의 불편함과 주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언한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더라. 인터뷰하고, 블로깅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와 같은 불편/필요를 느끼는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이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긴다.
| 전맹이며, 점자를 읽거나, 지팡이를 사용하여 이동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시각장애인 묘사다. 직장에서의 혜일님의 의사소통, 업무 진행은 어떻게 이뤄지나?
카카오 조직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업무시스템을 통해 글을 쓰고, 메신저로 대화하고, 구글 미트(Google Meet)로 회의를 진행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내 장애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장애가 특별한 것이 아님을 종종 느낀다. 시각장애인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경험과 편견의 반영이다.
제가 업무에 사용하는 단말기는 제 눈에 편리한 색상, 글자 크기로 설정했고, 확대 기능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세팅했다. 인쇄물은 확인을 위해 별도의 보조장치가 필요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불편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