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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08
광활한 우주에서 찾는 나만의 궤도
팟캐스트 '비혼세' 곽민지 작가
오늘의 키워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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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의 질문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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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명한 선언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우리 사회의 독립적인 삶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죠.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단순한 공간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유와 독립성,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압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했죠. 오늘날 독립적인 삶을 선택한 이들은 어쩌면 '자기만의 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팟캐스트 ‘비혼세’를 운영하는 곽민지 작가와의 대화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삶의 여정을 탐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관습적인 기대에 의문을 던지는 용기, 주변의 시선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결단, 그리고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창의성이 담겨 있습니다. 울프가 주장했던 경제적 독립과 자율성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형태의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테이블토크는 단지 하나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All the Single Ladies, 비혼세의 시작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만, 보통은 예능 작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회사를 다니다가 예능 작가로 전업을 해서 지금 15년 차 예능 작가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비혼세’라는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는 곽민지라고 합니다. 팟캐스트는 얼마 전에 5주년을 맞아서 이제 6년 차가 됐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정체성이죠. 반려견 김정원을 키우고 있는 정원이 언니이기도 해요. 정원이는 원래 제가 임시 보호로 데리고 있었는데, 그냥 평생 서로의 정원이 되자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어요. 저는 곽민지이지만 강아지 이름은 김정원인 건 성을 물려주고 싶어서였어요. 저는 성을 물려주는 게 이 사람의 어떤 특징을 닮았으면 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정원이가 겁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겁이 많고 다정하지만 강인한 사람을 닮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작사가 김이나, 배구 선수 김희진에게서 '김'을 따서 김정원이라고 지었어요.

| 팟캐스트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예능 작가로 일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죠. 그 기간에 예상하지 못하게 예능 프로그램이 많이 사라졌어요. 마침 그때 번아웃으로 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서 잠깐 일을 쉬다가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팟캐스트 ‘비혼세’를 처음 만들 때쯤에는 결혼 생활에 대한 예능 프로그램이 되게 많았어요. 혼자 사는 사람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명할 때도 잘 사는 모습을 다 보고, 마지막 질문으로 "결혼을 안 해서 외롭지 않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이런 얘기를 꼭 하더라고요. 한참 재밌게 잘 사는 얘기를 보고 마지막 질문은 결혼으로 귀결되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어요. 그래서 비혼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들었어요.

팟캐스트 ‘비혼세’의 대표 이미지 | ⓒ비혼세

다만 “모두가 비혼으로 살아야 돼!” 이렇게 주장하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냥 비혼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비혼의 세상을 보여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혼의 세상'을 줄여서 '비혼세'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또 가수 비욘세의 노래인 '싱글레이디'도 떠오르면서 겸사겸사 비혼세로 지었습니다.

| 왜 영상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선택하셨나요?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 쭉 영상 매체를 만들어왔어요. 그러다 보니 영상 매체를 만드는 거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어요. 그리고 영상은 커야 되고 카메라 감독님도 있어야 되고 누군가 편집을 해줘야 하고 그런 게 있어서 음성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비혼세는 주 1회, 1시간 반에서 2시간 분량인데, 이 분량의 영상은 1인 창작자가 만들기  정말 어려워요. 그냥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는 거고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기에는 오디오 콘텐츠로 길게 깊은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게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디오처럼요. 라디오보다 좋은 점은 노래를 안 틀고 중간 광고가 거의 없어서 정말 동네 맥주집에서 옆테이블 얘기 듣듯이 편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거죠.

| 비혼세 팟캐스트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제일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내가 아는 영역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에요. 크게 배운 거는 과거 진행했던 '소방광 특집'에서였어요. 소방관 아니고 소방광이요. 방광이 작아 화장실을 자주 가는 분들의 에피소드를 모아 특집으로 만들었죠.

이 특집은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친구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시작했거든요. 저는 제가 표준인 줄 알았는데, 저는 꽤 ‘대방광’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소방광 특집’ 사연을 오픈했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너무 한 맺힌 사연이 많아서요.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은 대방광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학교 다닐 때 그게 너무 힘들었다는 사연, 친구들이랑 여행 갈 때도 “혼자 여행을 가면 운전도 혼자 하니까 40분, 50분에 한 번씩 자주 휴게소를 들러도 되는데, 친구들이랑 넷이 여행을 갈 때는 매번 쉬자고 할 수 없다”는 고민도 있었어요.

더불어 화장실을 많이 가기 때문에 집 인테리어도 바꿨다는 사연을 접하고 정말 사람마다 모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았죠. 팟캐스트에서 늘 비혼의 가치, 비혼 라이프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공유하게 되는 거죠.

2023년 1월에 진행한 비혼세 공개방송 현장, 유독 ‘솔플’ 관객이 많았다. | ⓒ비혼세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찾는 동반자적 관계

| 책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에서 비혼의 삶에 대해 얘기하셨는데요. 결혼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오히려 결혼이 어떤 결심이 필요하고, 큰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비혼은 원래 비혼이잖아요. 결혼한 상태로 태어나서 사는 게 아니니까 비혼이 된 계기는 따로 없는 것 같아요. 반대로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서 되게 적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는 막연히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회사에 다녔을 때도 동기들도 가정을 이루고 하니 나도 나중에 저런 때가 오겠지, 2차 성징처럼 저런 마음이 생겨나겠지 했거든요. 그런데 예능 작가로 일하면서는 전형적인 삶을 산 사람들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분들을 더 많이 목격했어요. 물론 그게 인상 깊기도 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비혼의 삶을 선택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엄마 아빠가 진짜 지금도 서로 너무 사랑하는 부부인데, 유일한 두 분 사이의 마찰은 결혼 제도에서 비롯되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가족으로 결합되지 않았으면 좀 더 두 분이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결혼 자체에 대한 막 큰 환상이 없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곽민지 작가의 저서 <아니 요즘 세상의 누가> 표지 | ⓒ위즈덤하우스

| 30대 서울 거주 여성, 작가, 프리랜서, 팟캐스트 진행자, 정원이 언니, 둘째 딸 등 다양한 정체성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정체성과 이건 잃어도 되겠다 싶은 건 무엇인가요?

제일 애정이 가고 잃고 싶지 않은 정체성은 정원이 보호자인 것 같아요. 사실 나머지는 잊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엄마 아빠의 자식인 것도 잊고 살아도 되고, 팟캐스트 진행자, 작가 이런 것도 다 잊을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사람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정원이는 명백한 약자잖아요. 저는 약자의 보호자이고요. 오늘처럼 인터뷰 일정을 잡을 때나, 운동 일정을 잡을 때나, 예능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나, 여행 갈 때, 그리고 하루에 몇 시에 일어날 건지 몇 시에 잘 건지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바로 강아지의 보호자인 것 같아요.

잃고 싶은 정체성은 30대 서울 거주 여성이요. 제가 비혼 생활 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상이 어쩌면 특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집 밖으로 나가면 편의시설이 다 있는 서울에 산다는 것도 큰 특혜죠. 그리고 이성애자 여성인 것도, 4년제 대학을 나온 고학력자인 것도 누군가에게는 특혜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팟캐스트를 하면서 많은 사연들을 받다 보니까 정말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내가 규정한 세상이 정말 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취자분들이 하나씩 알려주시는 덕분에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고 있어요.

반려견 ‘김정원’과 곽민지 작가 | ⓒ곽민지

| 비혼 가치관에 대한 스스로 혹은 연인과의 갈등 경험, 고민은 없으셨나요?

비혼 가치관에 대해 스스로와의 갈등은 없어요. 비장하게 결심해서 지켜나가는 성격의 가치관이 아니기 때문에 갈등도 생기지 않는 것 같아요. 저에게 비혼은 스스로에 대해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지, 어떤 신념은 아니어서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이 연상되거나, 여기에 어떤 제도적인 방식을 더해야만 진정성 있는 완결이 지어진다고 느끼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느끼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연인과의 갈등은 있었죠. 가까워지기 시작할 때부터 결혼관 혹은 비혼관에 대해 꼭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도 결국은 상대가 결혼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 지치더라도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고, 오히려 나는 상대에게 다른 역할을 지우지 않는 것도 다른 면의 큰 사랑”이라는 얘기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나를 더 사랑하면 혹은 나를 더 믿으면 생각을 바꿔줄 거라고 생각했던 연인들이 있었죠. 근데 가끔은 정말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왜 결혼 안 해줘”라는 연인의 질문에 “나도 널 사랑하는데 왜 비혼 안 해줘?”라고 되묻기도 했어요.

또 가끔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질문들이 내면화되어서 "나는 혼자 늙어갈 텐데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생길 때도 있어요. 그런데 나이 지긋한 주변 분들을 보면 심지어 기혼자더라도 배우자보다는 자매나 친구들, 종교나 지역 공동체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비혼 상태가 노년의 외로움을 유발한다는 가설도 늘 옳지는 않더라고요. 그때마다 저는 제가 만들어가는 관계망과 공동체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나이를 들어가면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고, 이건 기혼자에게도 해당한다고 생각해요.

광활한 우주에서 찾는 나만의 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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