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유명인의 마약 투약과 청소년의 마약 투약률 관련 보도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마약(痲藥)’의 한자어 중 ‘痲’(저릴 마)는 ‘저리다’, ‘감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약은 고통을 줄이는 진통제 성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현실을 잊기 위한 도피성 쾌락 추구를 위해 오남용되기도 합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하 청소년 마약사범은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31.0% 증가했습니다. 이 수치는 요즘 자주 오르내리는 ‘펜타닐’과 같은 신종마약류 및 향정신성의약품의 오남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2020년 기준 청소년 마약사범 313명의 약 10배 이상의 청소년이 이미 마약류에 중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SNS 등 비대면 경로가 고도화되며 구매자와 판매자가 비접촉해도 마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마약의 구매뿐 아니라 판매까지 가능하게 된 계기이지요.
올해 마지막 테이블 토크 - 픽은 근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청소년 마약류 오남용을 방지하는 해외의 교육 프로그램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마약류 오남용 방지 교육의 목표는 청소년들이 약물 사용으로 인한 해로움을 알게 하는 것이고, 만약 이미 마약을 사용했다면 그 해로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중독과 마찬가지로 약물중독도 예방이 먼저입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먼저 선택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쉽게 생각해, A 물질이 마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A에 중독되는 것과 A가 마약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다 접한 A에 중독되는 것은 접근 경로부터 중독 관리까지 방법이 전혀 달라지겠죠. 최근 이슈가 된 신종마약 펜타닐도 많은 청소년이 의사의 처방으로 구입했기에 마약이 아니라고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패치형으로 확산된 펜타닐처럼 젤리, 액상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신종마약류에 대한 인식 교육이 필요합니다.
먼저, 미국의 교육기구 ‘DARE’(Drug Abuse Resistance Education, 약물남용저항교육)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DARE가 '저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청소년 마약 사건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각 지자체, 교육청, 학교 등에서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법정 의무교육 시간은 충분치 않습니다.
‘DARE’는 1980년대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설립된 기구입니다. 로스앤젤레스 주에서 처음 설립된 DARE는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미 전역에 확산되었고 미국 정부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은 학교 경찰이 직접 초등학교 교실에 방문해 약물의 유해성, 또래문화 사이에서 약물을 거부하는 방법, 약물 대체 방법, 자존감과 지원 네트워크 등 약물 사용을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으로 구성됩니다.
최근 텍사스주에서도 DARE 교육을 재도입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배경에 펜타닐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의 한 청소년이 인터넷에서 진통제를 구입한 뒤 복용했으나 사망하는 사건이 있은 후였습니다. 부검 결과, 진통제에 펜타닐이 함유되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청소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펜타닐에 노출/중독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때문에 텍사스주는 펜타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기로 하며 DARE 프로그램을 재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선 학교에 배치된 학교 경찰이 지속적으로 약물남용 예방 교육을 이수해 교육강사로 활동하는데, 학교경찰 제도가 없는 국내에선 체계적으로 교육강사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마약예방 전문교육원이 있습니다. 2016년 설치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교육원에서 예방교육강사를 양성해오고 있습니다만, 2022년까지 양성된 강사가 136명에 불과합니다. 청소년의 연령별/노출에 취약한 약물종류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려면 인력부터 충원해야 하고, 예방 강사들이 더 많이 유입되도록 보상이 필요합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길 보트빈 박사가 개발한 LifeSkills Training(LST)은 약물중독 등 고위험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내면 훈련에 가깝습니다. 청소년 약물 중독은 가족, 심리적, 생물학적, 대중매체, 사회문화적 요인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해 발생합니다. 그중 LST는 도피성 수단으로 약물을 남용하는 습관, 우울과 절망 같은 감정에 대한 방어기제로 약물을 사용하는 습관 등에 집중합니다. LST는 다음 [표-1]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해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서 각각 다른 커리큘럼으로 교육합니다. 이 세 가지 영역에서 기술을 개발한 학생들은 고위험 행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훨씬 적어진다고 하네요.
LST가 교육하는 세 가지 스킬 중 자기관리 스킬은 청소년이 자기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게 합니다. 약물이나 기타 자극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내면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합니다. 대인관계 스킬은 약물 중독에 있어 또래문화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LST는 강의, 토론, 코칭 및 실습을 통해 자존감, 자기효능감, 동료의 압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 합니다. 또한,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 사고 교육을 통해 약물남용 예방을 위해 신중하게 자신의 결정을 고려하는 데에 신경 쓰도록 합니다. LST의 참여자가 약물남용, 흡연, 폭력, 학교 부적응 등의 부정적인 행동이 약 50%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국립 약물 남용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의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keepin' it REAL'(kiR) 프로그램은 실제 상황에서 학생들이 직면하는 약물 유혹에 대처하는 방법에 초점을 둡니다. 프로그램의 이름 'REAL'은 거부(Refuse), 설명(Explain), 회피(Avoid), 떠나다(Leave)의 약어입니다. 기억하기 쉬운 'REAL' 전략을 통해 약물 사용에 저항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죠.
kiR의 모토는 "From kids, through kids, to kids(어린이로부터, 어린이를 통해, 어린이에게)"입니다. kiR의 프로그램은 청소년이 직접 경험한 것을 반영하며, 도시 버전, 농촌 버전, 다문화 배경 버전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세분화되어 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다문화배경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 등 이주배경청소년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기에, 획일화된 교육이 아니라 지역,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kiR은 10주 동안 10개의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이 거부, 설명, 회피, 떠나기의 실제 전략을 실행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청소년이 직접 제작하고 청소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상을 학습에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단순히 학습에 참여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 상황을 대입하고 자신과 유사한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그 결과, 전반적인 약물 사용이 감소하고, 마리화나와 알코올 사용, 흡연 등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