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화자에 따라 말의 깊이와 울림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삶의 지혜를 가진 어르신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와닿기 마련이죠. 오늘은 어르신의 손글씨와 그림으로 젊은 세대에게 응원을 전하는 브랜드 '신이어마켙'의 심현보 대표를 만났습니다.
폐지를 수거하던 어르신들께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하는 법인 ‘아립앤위립’을 운영 중인 심 대표. 그는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는 법인의 이름에 걸맞게, 콘텐츠와 굿즈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고민합니다. 세대 간 소통, 노인 일자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심 대표의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원래 소외계층에 관심을 두고 계셨나요?
저는 경영을 전공하고 교육 기획과 스포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면서 일반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부속품일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제가 하는 일이 더 가치 있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가까이 사는 친할머니댁에서 박스와 폐지 더미들을 발견했는데요. 의아함에 여쭤보니 할머니께서 직접 주운 것이라 하시더라고요. 무릎 수술 후 재활 운동을 하며 동네에서 폐지를 줍고, 고물상에 팔기 시작하셨대요. 우리 할머니는 생계유지에 어려움은 없으셨지만, 친구분 중에는 폐지를 줍지 않으면 안 되는 분들도 계셨어요.
폐지 수거가 불결하고 불편한 일로 여겨지다 보니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우리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분들이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했죠.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폐지 수거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됐어요. 폐지를 줍는 분들은 대부분 취직이 어렵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공공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셨으니까요. 이를 계기로 폐지 수거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게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래서 이 모델을 비즈니스로 전환해 아립앤위립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브랜드 ‘신이어마켙’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신이어마켙 이전에 '인생 꿀팁'이라는 브랜드가 있었어요. ‘세월의 지혜가 젊은 날에게’라는 메시지로 어르신의 격언을 통해 청년들을 위로하고자 했죠. 그러나 브랜드의 무거운 느낌 때문이었는지 200개를 만들면 100개도 팔지 못했어요(웃음).
이후 고객이 브랜드를 가볍게 느낄 수 있도록 리브랜딩을 결심했어요. 청년과 노년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서로를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물리적인 접점을 생각했는데, 지하철이 떠올랐죠. 지하철에서 만나는 노인의 이미지는 왠지 드세고 이기적일 것 같잖아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은데도요.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두려워하고 계셨어요. 당시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 사건이 잦았거든요.
이렇듯 청년과 노년 세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오해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탄생한 게 ‘신이어마켙’이에요.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가 ‘신이어 상담소’였고요. 2030세대가 고민을 보내면, 어르신들이 수기로 답변을 달아주시는 거였죠. 질문에 대한 답을 발췌해 굿즈로 제작했어요.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신이어마켙을 통해 청년과 노년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 청년과 노년이 함께하는 조직인 만큼, 소통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저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지만, 조직 차원에서는 소통에 신경을 쓰고 사전에 그라운드 룰을 정해둬요. 또, 신이어 담당자를 따로 두어 소통을 돕고 있죠.
처음 오신 신이어분들께는 이렇게 설명해 드려요. “여기는 일을 하러 모인 곳입니다.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워야 해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린 직원에게 커피를 타오라거나 물을 떠 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여러분보다 저와 팀원들이 선배입니다.” 이렇게 웃으면서 말씀드리면, 어르신들도 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덕분에 구성원 모두가 동료로서 서로 존중하며 일할 수 있죠.
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자체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신이어분들의 업무 효율은 각자 달라요. 어떤 분은 1시간에 10개를 만들고, 어떤 분은 3개밖에 만들지 못할 수 있죠. 그러나 중요한 건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거고, 최선을 다한 결과는 동일하게 존중받는 거예요. 저희 회사 명인 ‘아립앤위립’,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는 것과도 이어지는 부분이에요.
| 함께 일하는 신이어분들은 어떻게 만나시나요?
지역의 복지관을 통해 어르신들과 연결되고 있어요. 팀 내부 기준에 따라 사회복지사님이 인터뷰를 진행해 주세요. 기존에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제외하고, 차상위 계층과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요. 기준에 부합하는 어르신을 매칭해주시면 그분들과 함께 일해요.
현재 맨 처음 합류한 정규직 어르신 한 분, 평균 연령 84세인 파트타이머 다섯 분, 지자체 시니어 클럽으로 연계된 어르신들 다섯 분으로 총 11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어르신을 고용할 계획은 없어요. 그건 공공의 역할이니까요. 지속 가능한 인원수에 맞춰 일할 계획입니다.
| 신이어분들께는 어떤 일자리가 제공되고, 수익은 어떻게 분배되나요?
‘정예 멤버 그룹’인 파트타이머 분들과 정규직 어르신 한 분(총 여섯 분)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디자인 활동을 맡고 계세요. 이분들의 작업물에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신이어마켙의 제품에 활용하거나 브랜드 콜라보 콘텐츠로 제작해요. 일반적인 임금을 드리는 제품 포장 일자리는 시니어 클럽 어르신들이 맡아주고 계시죠.
| 정규직인 어르신은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어요?
저희 사업의 가장 큰 자랑인 분이에요. 사업이 7년 차에 접어들었고 정규직 어르신은 그중 6년을 함께 해오셨어요. 회사에서 정규직을 제안 드렸을 때 큰 결정을 앞두고 계셨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정부 지원금도 받고 쌀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등 혜택이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저희와 함께하기로 하셨어요.
“지금까지 공공에서 받은 다양한 혜택들이 있어 살아왔는데, 만약 지금 받을 수 있게 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않으면 더 필요한 누군가가 받지 않겠느냐, 난 아직 건강하니 기회가 될 때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선택을 하신 거였죠.
| 다른 분들은 제안을 모두 거절하셨다고요.
전체 정예 멤버 어르신들께 정규직을 제안했지만, 모두가 하지 않기로 하셨어요. 한 분은 끝까지 고민하시다가 포기하셨는데, 그 이유는 회사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죠. “언제 아플지 모르는데 갑자기 아파서 출근하지 못하면 회사에 폐를 끼칠 수 있으니 약속한 것만 하겠다.” 이 말씀을 듣고 감사한 마음과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팀 내부에서는 가급적 어르신들께 정규직을 제안 드리지 않고 있어요. 청년들에게는 정규직 전환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르신들께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대에 따라 고용 형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어르신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좀 더 나은 고용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어르신들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고자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저희는 폐지 수거 노인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 마련을 목표로 했지만, 이제는 만 65세 이상 노인 누구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노인 일자리 자체의 필요성을 실감한 거죠. 어떤 관점에서 보면 65세는 굉장히 어린 나이이기도 하거든요. 기존에 마련된 어르신 일자리 사업에는 이분들이 하기에 너무 단순하거나 루즈한 일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훨씬 액티브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