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자신의 아기를 남긴 뒤 되찾으려는 미혼모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기가 버려진 이유가 아니라, 좀 더 강의 위쪽에서 그물망을 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은 이 영화 대사와 같은 물음을 던지며 문제의 상류에 개입해 위기임신 부모에게 필요한 자원을 연결하는 회사를 만나봅니다. 현실에서도 베이비박스에 다시 찾아오는 부모는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오지 않고 아기를 잘 키우도록 지원을 연결할 수 있을까요? 사단법인 비투비 김윤지 대표님의 이야기입니다.
| 왜 베이비박스 주제에 관심을 가졌나?
2013년 11월, 우연히 본 기사에서 베이비박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아기를 두고 가는 상자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곧장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 가서 2년 정도 자원봉사를 했다. 당시 베이비박스는 항상 기자들이 상주해 있을 정도로 뜨거운 이슈였다. ‘베이비박스는 영아 유기를 조장하니 없어져야 한다’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의 의견 사이 논쟁이 오갔다. 지금도 아기들은 계속 들어온다. 베이비박스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보다는 그 앞 단계에서 아기가 베이비박스까지 오는 과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뛰어들게 되었다.
| '베이비박스 프로젝트'를 통해 "아기를 살리려면 부모를 살려야 한다"라는 목소리를 내었다. 프로젝트에서 추출한 데이터는 어떤 내용이었나?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했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 1천여 명의 상담 일지 5년 치(2010-2014)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기본적으로 이들의 배경에는 ‘청년 빈곤’이 깔려있었다. 이들은 경제적 빈곤과 주거 불안정으로 모텔방, 친구 집, 심지어는 자동차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한부모가정, 혼인관계가 아닌 다양한 관계에서 나온 아기,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 우리 사회가 전형적으로 간주하는 가족의 형태를 벗어난 경우도 많았다.
당시 대중은 이들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무책임한 범죄자로 보았다. 하지만 이 배경을 개인의 무책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중첩되어 있었다. 결국 우리 사회 안전망 밖에서 부모가 된 청년들의 문제였으며, ‘아기를 살리려면 부모를 살려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 부모들은 보통 어떤 행동을 보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이 아기를 충동적으로 버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모들이 임신 사실 인지 후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인터넷 검색’이다. 통신비가 없어 공기계만 들고 다녀도,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여 대면 도움 요청이 힘들어도, 대부분의 부모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아본다. 이들은 자신과 아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다양한 선택지를 모색한다. 하지만 많은 정보가 어려운 행정용어로 되어 있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으며, 지원 대상에 본인이 해당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들이 베이비박스를 찾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내린 최후의 선택이다.
| '품(puum)'은 어떤 서비스인가? 왜 모바일 솔루션에 집중했나?
한 가지 유의미한 통계를 발견했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 중 30%가 다시 아기를 데려간다. 어쩌면 이들도 아기를 키우고 싶은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아무 개입 없이도 30%의 부모가 아기를 데려가는데, 이 비율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의지를 뒷받침해 주는 원가정 지원을 통해 아기들이 시설에 오지 않고도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기임신 정보 지원 플랫폼 품(puum)을 기획했다. 필요한 자원과 정보를 쉽고 빠르게 연결해 주면 그들이 베이비박스까지 가는 물살 자체를 돌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대면 상담과 지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온라인 솔루션에 집중하게 되었다.
| 플랫폼 구축 시 어떤 요소에 특별히 신경을 썼나?
우선 임신 중 갈 곳이 없어 공원 벤치에 앉아 핸드폰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불안정한 환경에서 이동 중에도 필요한 정보를 빨리 찾을 수 있는가’ 이다. 정부 지원 정책은 물론 민간 섹터 자원까지 모두 한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필터링을 통해 수많은 정보 중 필요한 정보만 골라 맞춤 정보 처방을 해주는 방식이다.
기존의 신청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이전에는 대상자가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각 기관에 복잡한 신청서 양식을 제출해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품에서는 대상자들이 구글폼을 통해 간편하게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자원과의 쉽고 빠른 연결이 플랫폼 구성의 핵심이다.
| 위기 임신 시 부모들은 '품(puum)'을 어떤 방식으로 알게 될 수 있나?
인터넷상에서 어디에 정보를 놓으면 품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지원 관련 검색을 할 때마다 품이 노출되게끔 키워드 검색 광고를 시도했다. 그러나 현장 인터뷰를 통해 사용자들이 이를 광고성 글로 인식해 아예 클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신뢰성 있는 블로그나 지식인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잠재 사용자의 글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콘텐츠는 생애 주기별 필요한 정보와 관련 지원 사업을 소개한다. 콘텐츠를 통해 비슷한 상황의 대상자들이 계속 품을 찾아온다. 현재는 온라인과 검색 엔진 최적화를 통해 사용자와 효율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올해부터는 학교, 동주민센터 등 공공 기관 및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이 가능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 주요 타겟층과 이용률은 어떻게 되나?
2020년 4월, 광고 하나 없이 올렸던 품 사이트가 우연히 전국으로 오픈되었다. 오픈 3주 만에 전국 각지에서 1천 명 이상의 사용자가 접속했다. 성수동 한가운데서 던진 공 하나가 인터넷이란 모세혈관을 타고 전국으로 쫙 퍼지는 느낌이었다. 품은 2년간 모바일 웹으로 운영 후 작년 4월 앱으로 출시했으며, 현재까지 누적 회원 수 3천 명(웹 회원 1,200명, 앱 회원 1,800명), 누적 사용자가 4만 명, 누적 페이지 조회수는 50만 건 정도에 이른다. 사용자가 계속 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플랫폼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반증이다.
현재 가족의 형태와 연령대에 관계없이 지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임신/출산 구간에 있는 경우에 집중하고 있다. 현장 사례를 살펴봤을 때 임신/출산 과정에서 불안정하고 비위생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아기와 산모의 건강이 나빠진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질수록 부모는 자립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이 구간에 적절한 개입이 없으면 이후 개인, 가족,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해당 구간의 부모는 조건에 상관없이 지원을 집중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