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의 높은 임대료와 치열한 경쟁에 지친 청년들이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거나 창업이라도 한다고 하면 "거기서 뭘 먹고 살지?", “혼자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어린 질문이 먼저 떠오르죠. 과연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청년들이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충남 홍성의 '집단지성'은 이런 의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을 제시합니다. 2020년부터 홍성에 모인 청년 창업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사업을 운영하며, 느슨하지만 단단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왔습니다. 초록코끼리 김만이 대표와 김정아 팀장, 이채원 커뮤니티 매니저를 만나 그들이 홍성에서 발견한 가능성과 현실적인 생존 전략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이 독특해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김만이 | 사실 처음에는 '플랜H'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플랜B, 플랜C 이런 게 유행이기도 했고, 저희가 제시하고 싶었던 건 로컬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홍성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였죠. 근데 주변에서 직관적이지 않다고 반응이 좋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한 팀이 '집단지성 어때요?'라고 제안을 했어요. 저희도 생각해보니까 좋더라구요. 집단지성 본래 뜻에 ‘집이 모여서 단지가 되고, 단지가 모여서 성이 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을 수 있었죠. 저희 모토가 '단단한 성을 쌓자'거든요. 모래성처럼 쓰러져가는 로컬 창업자들이 모여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성장할 수 있는 커뮤니티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세 분 모두 홍성 출신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홍성과 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김만이 | 저는 서울 출신이고 농업경제학 석사를 전공했어요. 나주에 있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일하다 현장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서 지역 컨설팅 회사로 옮겼죠. 지역을 많이 다니면서 느낀 게 '왜 다들 안 된다는데, 실은 되는 게 많지?'였어요. 지역에서는 "이거 내가 해봤는데, 안 돼"라는 말씀을 많이들 하시는데, 진심으로 설득하고 운영해보니 대부분 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창업을 하게 되면 로컬의 '안 된다'는 편견을 깰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홍성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유기농업 특구거든요. 철학을 가진 농부님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고, 농업의 유통 문제나 낮은 부가가치 확대를 스타트업 방식으로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서울시 넥스트로컬* 사업에 홍성 지역이 나와서 지원했죠.
*넥스트로컬: 서울 청년들의 창업, 일자리를 통한 지역 이주를 지원하는 청년 지역상생 프로그램
김정아 | 저는 도시공학과 출신으로 부동산과 IT 기술을 융합한 ‘프롭테크(proptech)' 회사를 다녔는데, 창업한 남편을 따라 지방에 다닐 일이 많았어요. 남편(김만이 대표)과 주말 부부를 하다 코로나 때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남편이 있던 홍성으로 집을 옮겼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초록코끼리에 합류했어요. 각자 직장을 다니던 시절, “새롭고 다른 길로 살고 싶다”는 얘기를 같이 많이 나눴었거든요.
이채원 | 저는 2016년 홍성 청운대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홍성에 처음 왔어요. 솔직히 처음엔 시골이라는 이미지만 강했고 이곳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지역 농부님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들의 농사에 대한 가치관, 자연을 생각하는 농업 방식을 보고 '이 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대학교 4학년 때 지역 농산물로 샐러드 사업을 시작하며 정착을 결심했죠.
| 집단지성은 어떤 팀들로 구성되어 있나요?
김만이 | 처음엔 홍성 지역 5개 팀으로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초록코끼리로 밀키트 사업을 시작했을 때 한계를 느꼈던 게, 서울에서는 공유오피스 등에서 쉽게 인재를 찾고 협력하며 성장하는데, 농촌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어 고립감이 컸죠. "홍성을 떠나야 하나?" 고민하다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을 찾아다녀보니, 다들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됐죠. 그래서 “한번 뭉쳐보자"라는 생각으로 작은 협업부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초록코끼리는 유통이 필요했고, 와우네(이채원님이 운영하던 샐러드 스타트업)는 가공이 필요했는데 서로 협업하며 시너지를 내게 된 거죠. 지금은 지역 내외 총 10개 팀이 함께하고 있어요. 와우네는 저희에 흡수됐고, 나간 팀들도 있고 소시지 가게, 젤라또 가게, 서점, 금속공방 등 새로 들어온 팀들도 있죠.
김정아 | 운영진 역할은 저희 세 명이 하고 있어요. 매달 '월간 집단지성'이라는 정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근황을 나누고 지역 소식과 사업 기회를 공유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협업이 이루어지죠.
| 집단지성의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김만이 | 주로 로컬 자원과 문제의식에 기반한 창업을 지원하는데, 크게 네 단계로 나눠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타 지역 사람들이 홍성을 경험해볼 수 있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이에요. 홍성의 식재료와 음식을 기반으로 지역의 맛을 탐구하는 로컬테이스터나 지역 문화나 자원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디퍼로컬 등 프로그램으로 지역에서 기회를 탐색하도록 돕죠.
두 번째는 일자리 실험인데요, "내 역량과 지역 콘텐츠를 결합해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참가자들이 MVP를 만들어보는 과정이에요. 2개월에 걸친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만들 수 있구나'하는 가능성을 심어줍니다.
세 번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겠다는 친구들과 함께 중소벤처기업부 지원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사업을 기획하고 자본을 확보하는 단계예요.
그 다음 네 번째, 홍성에 자리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로 이어져요. 여기에 이른 팀들은 홍보통 거리에 입주해 함께 지역 하는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 프로그램별 참여 규모와 성과가 궁금합니다.
김만이 | 1년차에는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120명 정도가 참여했고, 일자리 실험에는 12팀이 함께 했어요. 그 중 실제 창업으로 이어진 팀은 5~6개, 최종적으로 홍성에 정착한 팀은 3팀이에요.
김정아 | 1년차에는 정말 모두가 몸을 갈아넣어가며 진심을 다해서 했어요(웃음). 거의 하루에 13~14시간씩 참가자들과 함께 했거든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식사 장소로 이동하고, 저녁 10시까지 계속 이야기하고, 다음날도 그렇게 반복했죠.
이채원 | 그래서 2년차에는 좀 속도조절을 했어요. 1단계 참여 규모를 50명으로 줄였는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은 비슷했어요. 그리고 숫자를 줄이는 대신 이미 정착한 팀들과의 협업에 더 집중하기로 했죠. 신규 유입에 50%, 기존 팀들과의 협업에 50% 정도 자원을 배분하기로요.
| 각지에 있는 다른 청년마을들과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정아 | 전국 39개 청년마을이 있는데 주로 쉼, 명상 같은 컨셉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는 좀 달라요. "쉬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느낌이랄까요(웃음).
김만이 | 저희가 처음 내세웠던 키워드가 '성장과 가능성'이에요. 농촌을 단순히 치유와 쉼의 공간이 아니라, 청년이 도시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채원 | 전국의 청년마을을 다양하게 체험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이, "빡세다", “로컬 유격훈련 같다” 예요. 다른 곳은 11시 쯤 느즈막히 일어나 동네 투어하는데, 저희는 아침 9시에 깨워서 밤 10시까지 쉼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든요(웃음).
| ‘감자빵 프로젝트’가 화제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김만이 | 일자리 실험 프로그램의 대표 사례예요. ‘23년 홍성에서 이상 기후로 감자 농사가 다 망했거든요. 되게 짜잘한 못난이 감자만 많았거든요.
김정아 | 지역의 이런 문제를 참여자들에게 노출시켰어요. 로컬테이스터 프로그램 중 '감자의 증명사진'이라는 이름으로 2박 3일 워크숍을 진행했죠. 못난이 감자들을 어떻게든 팔아보는 방법을 기획해야 했어요. 한 참여자가 "감자로 뭘 만들어 팔아도 되지 않느냐”며 감자 붕어빵을 만들었어요. 두 달 동안 실험해본 후 지금은 미니 트럭을 사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팔고 있죠.
이채원 | 이런 식으로 지역의 문제나 자원을 계속 보여줬어요. 방치된 폐우사가 하나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만 알 수 있는 숨겨진 공간입니다. 현대무용을 전공한 참여자가 보더니 "여기서 공연하면 너무 좋을 것 같지 않아요?"라며 실제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고요.
| 로컬에서의 지속가능한 사업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김만이 | 사실 로컬에서 내수만으로 사업하는 건 성장에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감자빵 친구도 트럭을 산 거죠. 여기서 붕어빵집을 차리면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전국적으로 풀어보겠다고 한 거예요. 낫또를 만든 친구도 홍성에서는 "낫또가 뭐야?" 하는 사람들만 있어서 장사할 수 없으니 서울 용산에 가서 '낫투두'(?)라는 낫또바를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걸 '관계창업'이라고 불러요. 지역과 관계한 창업을 장려하죠.
김정아 | 로컬에서는 사실 B2G가 중요해요. 처음엔 저도 몰랐는데, 초기 밀키트 팔 때 보니 B2C는 판매 단위가 되게 작은데, 관에서 구매할 때는 200개씩 사가시는 거예요. 보니까 로컬에서는 B2G가 서울의 B2B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안정성을 제공하는 거죠. 권도균 작가의 《스타트업 경영수업》 마지막 장 제목이 '용역사업'이에요. 정부나 지자체 용역사업을 자기 사업을 키우기 위한 씨앗으로 써야 한다는 거죠.
임대료 등 고정비가 낮은 것도 기회예요. 소시지 가게 하는 친구 보면서 "임대료 20~30만원밖에 안 해도 못 내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빈틈을 노리고 열심히 하니 고정비 대비 충분한 매출이 나오는 거예요. 공방 운영하시는 분은 인터넷 판매를 주로 하는데, 장소가 넓고 싸니, 서울 오피스텔에서 운영할 때보다 훨씬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채원 | 로컬의 또다른 장점은 플레이어가 많지 않다는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소세지 가게도 보면 늘 만석이더라고요. 이 동네가 저녁엔 캄캄했는데, 밤 12시까지 하는 가게가 생기니까 사람들이 어떻게든 오시는 거예요. 세 타임 회전이 계속 돌아가더라고요. 저희도 초기에 "지역에서 요리하는 젊은 팀이 있대"라는 것만으로도 용역이 들어오더라구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