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4시간 연결된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고립감과 외로움이 만연한 사회를 살고 있기도 합니다. 사회적 유대나 관계가 끊어지는 걸 경험하는 청년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죠. 이는 누구나 쉽게 고립될 수 있음을 의미해요. 존재클럽은 사회적 고립을 겪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티 기반 브랜드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존재클럽의 브랜드 매니저이자, 운영법인 지식순환사회적협동조합의 박두헌 사무국장을 만나보았습니다. 단절을 연결로 변화시키며 자발적이고 느슨한 연결을 만드는 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아요!
1. 누구나 고립될 수 있는 사회
2. 다양한 존재를 긍정하기
3.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꿈꾸며
| 사회적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 어려움은 점차 깊어지는 것 같아요. 청년의 고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저는 지식순환사회적협동조합(이하 지순협)은 오랫동안 ‘대안대학’이라는 사업을 운영했어요.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의 학교 사업이었는데요. 저는 이곳의 졸업생이자 수업을 관리하는 활동가였어요. 교육과정을 운영하다 보면 수업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 있었죠. 등교를 하더라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또래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더라고요.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수업에 나오지 않는 상황도 자주 생기고요. 이런 친구들과 여러 차례 만나면서, 마음을 다잡고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설득했던 경험이 있어요.
2020년 팬데믹 이후 ‘고립 청년’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려오면서 ‘어쩌면 이 친구들도 일종의 고립을 겪고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정 자체를 버거워 하는데 이대로 진행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도 했고요. 그래서 청년의 사회적 고립 문제에 더 관심이 갔어요.
| 활동가로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고립 청년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되셨군요.
개인적인 경험도 영향을 미쳤어요. 저 또한 비진학 청년이기 때문에 고립에 취약한 상태에 놓인 시기가 있었죠.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능 거부 시위를 했거든요. 대학 교육 자체도 문제지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과정에도 문제가 많잖아요. 그 과정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취지였어요.
이후 바로 일터로 나갔고, 나가서 몇 년 동안 일을 해보니 벽에 부딪혔던 것 같아요. 또래 관계가 부족했고, 나만 홀로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불안감과 고립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거부한 건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인데, 결과적으로는 삶에 필요한 여러 자원이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관계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주류 사회 혹은 정상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것, 한국은 그런 사회라는 것을 이때 몸소 배운 것 같아요.
저 역시 나름의 고립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고립 청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사회적 관계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충분하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존재클럽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 “개인의 존재 방식을 긍정한다”라는 존재클럽의 활동 목표가 인상적이에요. 사용하신 단어들에도 세심한 기획력이 돋보이고요.
존재클럽의 이름을 지을 때 두 가지 사항을 고려했어요. 하나는 고립을 겪는 청년들이 ‘오고 싶어하는 이름’이었으면 했어요. 스스로가 도움이 필요한 처지임을 인정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에요. 청년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이름에서 부정적인 인상이 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렇다고 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스스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요청하는 용기도 아주 중요하죠. 하지만 신청할 때부터 몇 수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했어요.
보편적으로는 ‘고립 청년들을 발굴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갈 마음이 없는 사람을 마치 무슨 지하자원처럼 발굴하고, 무언가를 바꾸겠다고 하는 건 당사자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립청년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이고, 능동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그리고 다채로운 형태의 삶과 존재의 방식이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한국은 과도하게 정상성을 좇는 사회잖아요. ‘어떤 나이 정도 됐을 때, 적어도 이 만큼은 해야 한다’를 매우 중시하죠. 비주류적인 것, 소수인 것, 약한 것들을 배척하고 해소하려는 힘이 너무 강한 사회인 것 같아요. 이런 압력이 어떤 식으로든 개인화되어서 고립을 겪는 분들이 많고요. 그래서 다양한 존재를 긍정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싶었어요.
| 존재클럽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기수제로 운영 중이에요.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는 멤버십을 가질 수 있게끔요. 모집이 마무리되면 입학식 개념의 오픈 데이를 열어요.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것인지, 각자의 참여 동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나누죠.
존재클럽은 세 가지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어요. 참가자들은 글쓰기 클럽, 숲속 재연결 캠프, 경제적 자존감 Up 클럽 등 사전에 기획된 개별 프로그램에 참여해요. 저희가 강조하는 자발적이고 느슨한 연결을 위해 온라인 소통 채널에서도 함께하죠. 이 채널은 개인의 일상과 정보를 공유하는 또 다른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더불어서,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하고 활동비도 지원받아 소모임을 직접 운영하는 경험도 할 수 있어요. 이 밖에도 현재의 고립도, 불안감 및 우울감 정도를 파악하고 멤버십 기간 동안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자기 체크리스트도 제공하고 있죠.
| 함께한다는 유대감이 중요한 요소일 것 같아요.
어제 봤던 사람 오늘도 볼 수 있고, 내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형성하는 게 아무래도 중요하죠. 그런 기대감이 시간과 쌓이면서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해 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 활동에 참여한 구성원들의 변화를 느끼시나요?
사실 참여자의 변화가 그렇게 빨리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고립된 기간이 길면, 그만큼 회복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사회가 얼마나, 어떻게 변화했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을 둘러싼 지지 체계와 환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피는 거죠.
참여자 중 인상 깊은 사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피어 서포터’로 성장한 분들이에요. 고립된 경험이 있는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고립 당사자의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가분들을 ‘피어 서포터’라고 해요. 똑같이 어려운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마음이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해요.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점점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