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Talk.
People
#
97
2025.07.17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 가난』 안온 작가
오늘의 키워드
#복지
#여성
#창작/연구
오늘의 질문
선택의 폭이 좁아졌을 때, 포기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행사 안내
오늘의 키워드
#복지
#여성
#창작/연구
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시인 백석이 말하듯, 때로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난에도 저마다의 이유와 모습이 있었고, 그 안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죠. 안온 작가는 문학이 주는 작은 위안, 선택의 폭이 납작해져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자존심, 그리고 그 안에서 찾으려는 일상의 소중함을 모아 자신만의 '일인칭'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작가는 자신만의 가난을 기록하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의 거절과 좌절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간절함을 놓지 않았고, 결국 『일인칭 가난』이라는 책으로 세상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 더 많은 목소리들이 겹쳐지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각자의 일인칭 가난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그리고 그 고백을 듣는 따뜻한 침묵이 조금씩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일인칭으로 시작한 한 사람의 이야기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요즘 관심사가 있다면 함께 말씀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일인칭 가난』 저자 안온입니다. 현재 부산에 거주 중입니다. 요즘 관심사는 여성이 처한 이중 빈곤, 영케어러 문제, 자립 청년 문제.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특히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영케어러 문제입니다.

이유를 찾아보자면, 일단 저는 제가 영케어러가 될 수도 있었던 사례이기 때문에 그렇고요. 그리고 한편으로 저는 제가 빈곤을 말함에 있어서 저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빈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성 빈곤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 이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보면 부모나 가족 제도로부터 벗어나 있는, 소외되어 있는 청년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자립 청년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 도서 『일인칭 가난』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요?

 『일인칭 가난』은 사실 투고 도서였습니다. 기획 출간이 아니었어요. 2021년도에 저 포함해서 3명의 친구들이 글쓰기 스터디를 했어요. 각각 가지고 있는 어떤 소수자성, 사회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3명이서 열심히 모아서 1년 정도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쓴 후에 20개의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어요. 제 책장에서 비중이 높은 출판사부터 시작해서 정말 유명한 출판사 혹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출판사에 다 투고를 하다가 두 곳에서 답장 메일을 받았고, 그중 한 곳이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마티)였어요. 

출판사와 이야기 끝에 제 두 친구들은 다른 출구를 찾고 싶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한 친구는 기자가 되어 세상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고, 다른 한 친구는 영화 비평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남아 출간을 하게 됐죠. 출판사에서 감사하게도 여러 조언을 해 주셨는데, 워낙 작가로서의 자아가 너무너무 간절했던 제가 되게 많이 매달렸어요. “피드백 봐주세요. 이렇게 해 주세요”라고 했던 게 자연스럽게 계약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2023년에 책이 나왔습니다.

도서 『일인칭 가난』| ⓒ도서출판 마티

| 책의 독특한 디자인도 인상적이었어요. 각주가 본문과 겹쳐지는 형태인데요.

2년간의 출간 과정 동안 처음에 원고의 디자인을 의뢰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전혀 정돈되지 않은 원고였던 것 같아요. 약간의 충격 덕에 그후 총 네 번의 개고를 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원고를 김동신 디자이너분께서 보시고, 제가 썼던 글 중에 '가난의 목소리가 겹쳐지길 원한다'는 에필로그에 착안을 하셔서 현재의 디자인을 제안해주셨어요. '문장을 겹쳐두는 것이 목소리를 겹치고 싶다는 제 의도를 시각화해주신 겁니다. 개인적 서사에 원래라면 밑에 각주로 나갈 공적 논문이나 신문 기사, 연구 자료가 한곳에 모인 거죠.

페이지 하단에 배치하는 일반적인 각주와 달리 문장과 문장을 겹쳐 놓은 『일인칭 가난』의 각주 | ⓒ도서출판 마티

어떤 분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고도 하시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목소리가 한 번에 울렸을 때 각자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 얘기를 조금 더 어렵게 읽기 위해서는 이 디자인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어려운 일을 시각화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조금은 어렵게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 제목에서 '일인칭'을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칭은 결국 시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같은 사건을 봐도 시점은 정말 정말 다양하잖아요.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번째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거든요. 저는 가난 역시 각개의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개개인의 가난의 이유, 가난의 정도, 가난을 느끼는 체감하는 차이가  너무 다양한데, 이것들을 '나의 미묘한 가난이야'라고 눙칠 수는 없었어요. 실제로 초기의 원제는 '미묘한 가난'이었는데, '미묘하다'라는 말로 제가 일갈해버리면 또 다른 시점을 차단하는 통로처럼 쓰일까 봐 '일인칭'이다라고 바꾸게 됐습니다. 출판사 편집장님과 부산에서 밥을 먹다가 "정말 저만 본 가난 같은데 어떻게 표현하죠? 소설로 치면 1인칭 주인공이어서 다른 인물을 못 보는 건데."라는 말에서 '일인칭 가난'이라는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 부제인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도 인상적이었어요.

원래는 부제가 '마카롱과 월세의 사이'였어요.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에 좀 더 집중을 하고 싶어서 마카롱 1개에 1,700원짜리, 2,000원짜리를 사 먹고 싶지만, 월세를 내야 하는 청년 세대의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그리고 『일인칭 가난』으로 제목이 바뀐 이후, 이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지만 이야기에 따른 문제점 제안은 모두가 나누고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일 인분은 아닌'이라는 부제가 따라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각기 다른 시점에 의해서 파생된 결과값에는 공통분모가 있을 거고, 그렇다면 공통분모는 당연히 모두가 책임지고 나눠야 할 분수적인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현재의 제목과 부제를 달고 싶었어요.

선택의 폭이 납작해져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

| 이 책이 나오고 가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었죠. 보통은 가난을 '극복해야 할 것' 혹은 ‘탈출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이 있는데, 이에 대한 작가님의 시선은 어떠신가요?

과거 일다 인터뷰에서 제가 '가난은 꼭 극복해야 하나요?'라고 말을 했다가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렸어요. 제일 재밌는 댓글은 “북한으로 가라.” 뭐 이런 댓글, “저런 애들 도와줘 봤자 소용없다” 이런 댓글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가난을 탈출하지 말라는 게 아니었어요. 누구나 가난은 탈출하고 싶죠. 어떤 상황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원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다만 모두가 '극복'이나 '탈출'이나 '견뎌냈다', '이겨냈다' 이런 어휘를 쓰면 쓸수록 가난이라는 어젠다가 필요 이상의 악한 것, 잘못된 것, 나쁜 것으로 치부되더라고요. 가난에 이렇게 부정적 멍에가 씌워지는 게 싫다는 것이었어요. “가난을 탈출했어.”라는 말보다는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삶 중에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혹은 “나의 가난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으로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어.”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죠. 가난은 악하고 나쁜 게 아니니까요.

| 가난을 경험하면서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어요. 그게 컸어요. 근데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자존심이 뭐 고집이라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허세라거나 그쪽이 아니에요. 가난을 경험하면서 ‘선택의 한계’를 종종 느꼈거든요. 저한테는 되게 선택의 폭이 납작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 배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사범대에 가서 임용고시를 쳐서 선생님이 되는 길과, 국어국문학과 진학 후 대학원에 가서 시 공부를 하는 길 중에 당연히 후자의 길이 저에게는 경제적으로 더 힘든 선택이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자존심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왜 가난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납작하게 선택을 해야 하죠? 저는 일부러라도 예상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선택들을 하면서 저를 버티게 해 준 건 결국 제가 정말 좋아해서 선택한, 문학이었습니다.

| 책에서 지문을 통해 만난 문학이 버티게 해 줬다고 하셨는데, 어떤 작품들이었나요?

2015 창비 문학 교과서에 실린 김애란의 『입동』이요. 보험 회사를 다니는 남편과 주부인 아내 사이에 어렵게 가진 아이가 있는데, 어린이집 차량 사고로 아이를 잃어요. 아이가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의 캐릭터가 보험회사 직원인 거예요. 늘 항상 타인의 사고에 있어서 수치화했던 자기 자신이 스스로 사고의 피해자가 된 이후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 달랐던 거죠. 모습을 보면서 사무적인 이들과 이것이 삶인 이들의 간극, 그런 것들이 저의 삶에서도 많이 겹쳐졌어요. 시 중에서는 2022 비상 (강) 공통국어에 있는 백석의 『수라』를 좋아해요. 물론 제가 학창 시절 배운 문학도 포함이지만, 현재 일하고 있는 국어 강사의 입장에서 가르칠 때야말로 교과서 문학이 저를 위로해줍니다. 

추가로 고2를 가르치면서 늘 언급하게 되는 조세희 작가의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정말 좋아합니다. 저한테는 난쏘공이 좀 숨통을 틔워주는 작품이거든요. 사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은 꽤 부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학생들에게는 이 소설의 내용이 정말 생경한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해줘야 해요. 계고장이 뭔지, 철거민은 왜 발생하는 건지, 내가 살던 집을 철거하고 아파트가 올라가는데 왜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는지. 이런 것들을 다 설명해야 해요. 비단 이 친구들이 부촌에 있는 학원에 다녀서가 아니라, 그냥 요즘 친구들이라면 다 모를 수 있더라고요. 대부분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으니, 판자촌이 무엇이고 왜 생겼는지부터 얘기해야 하죠. 세대가 완전히 달라졌구나, 가난을 대하는 시선이 다르구나, 느끼는 부분이기도 해요.

안온 작가에게 위로가 되었던 교과서 문학들 | ⓒ문학동네, 스타북스, 이성과힘

| 약 20년 정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경험하면서, 느낀 한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지원을 받았어요. 책에도 나오듯 방학을 앞두고는 멸균우유를 받기도 했고 또 문화누리카드로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다만 문화누리카드의 지원 금액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죠. 다행인 건 문화누리카드의 금액이 저 때보다는 지금 훨씬 많아졌더라고요. 어쨌든 복지 제도를 통해서 제가 문학을 접하게 되었으니 고마운 부분도 분명 있죠.

하지만 여전히 세심함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온라인 접근성 측면에서요. 최근에 복지관과 미팅을 하면서 느낀 부분인데요. 여전히 복지관에는 정보 탐색을 위해 아동과 청년들이 종종 와요. 복지관까지 와야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거죠. 누군가는 온라인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를 복지관에 와야만 접할 수 있다는 게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모두 격차를 느끼게 하죠.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당연한 시대잖아요. OTT, 통신비, 하다못해 와이파이 설치 이런 것들이요. 조금 생각 못했던 부분 중에 하나는 요즘은 학교에서 패드를 다 나눠주잖아요. 근데 그 학생 집에 와이파이가 없는 거예요. 보여주는 물품적 지원 뒤에는 여전히 세심함이 조금 더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 현재 학원 강사로 일하시면서 느끼는 교육 현장에서도 비슷한 격차를 느끼시나요? 

최근에 느꼈던 사례는 수학여행이었어요. 인근 학교가 수학여행으로 오사카를 갔어요.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해외로 가는 거예요. 일단 놀랐죠. 저는 그런 것들이 당연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근데 한 학생이 "저 이번에 수학여행이 인생 첫 해외여행이에요."라고 얘기하니까 그 반 애들이 그 친구를 다 의아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싶은 마음이었겠죠. 사교육장 안에서도 그런 격차가 잘 보여요. 학원에 오는 친구들을 보면 저희도 눈치챌 수 있죠. 가정 형편상 빠듯하게 학원을 온 친구들과 그냥 수학학원 가는 김에 국어학원도 다니는 아이들의 차이가 있죠.

사교육계에 있으면서 철저하게 계급 사다리가 끊어지고 있다고 느껴요. 현재는 저 또한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니는 생업이지만, 사교육 계열에 속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죄책감을 느껴요. 되도록 빨리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꼭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일인칭으로 써 온 이야기에, 모두의 목소리가 겹쳐지기를
No items found.
(재)행복나눔재단 SIT(Social Innovators Table)팀
서울시 용산구 장문로 60 (동빙고동) 02-333-3963
수신거부 Unsubscribe
URL 복사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