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에 위치한 삐약삐약북스는 만화가 부부가 운영 중인 출판사입니다. 만화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만화가가 되고, 여러 작가를 모아 지역에 관한 프로젝트도 진행합니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삐약삐약북스의 지역 만화 시리즈로, 비수도권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합니다. 지역을 소개하는 여행책은 많지만, 지역의 현재를 보여주는 만화는 없었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며 지역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어떨까요? 삐약삐약북스의 공동 대표 김영석(불키드), 전정미(불친)를 만나보았습니다.
| <지역의 사생활 99>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불키드) 지역에 관한 만화책은 민담, 설화, 신화를 기반으로 지역 홍보 목적이 대다수예요. 하지만 저는 지역의 현재가 담겨 있는 만화가 보고 싶었어요.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곳에서 만나는지, 뭘 먹는지 궁금했어요. 매년 9개의 도시를 9명의 작가님과 만화로 만든다면, 11년이면 99개 도시를 만화로 다룰 수 있어요. 제가 보고 싶은 책을 좋아하는 작가님들과 만드는 거예요. ‘덕질’을 하는 거죠.
| <지역의 사생활 99>에는 작품의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도 있고, 고향이 아니지만 지역에 애정을 갖고 활동 중인 작가도 있습니다. 어떻게 작가와 지역을 연결했는지 궁금합니다.
(불친) 저희가 섭외하고 싶은 작가님을 먼저 정합니다. 연락하기 전에 작가님의 인터뷰나 뉴스들을 열심히 찾아보죠. 눈알 빠지도록 정보를 찾다가 작가님이 서울 토박이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허탈할 때도 있어요(웃음). 서울이 아닌 지역에 연고가 있어야 섭외가 가능한 프로젝트라서요.
(불키드) <지역의 사생활 99>에 참여했던 작가님께서 다른 지역 소속의 작가님을 소개해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지역이 더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연대감이라고 생각해요.
| 여러 작가와 소통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불키드) 저도 만화가이다 보니 작가의 자율성을 존중하려고 해요. 작품을 만드는 조건은 두 개 뿐이에요. 첫째로 지역의 랜드마크를 등장시킬 것, 둘째로 지역의 대표 음식을 등장시킬 것. 나머지는 작가의 자유에 맡겨요. 참여 작가가 재밌어 할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 지역의 대표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가에게도 매력적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 <지역의 사생활 99>의 앞뒤로는 지역에 대한 기초 정보와, 지역 투어 코스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불친) <지역의 사생활 99> 맨 앞 장에 응급실 정보를 실어요. 지역에서 살아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이 의료인데요. 2015년 충북 단양에서 아이를 가졌는데, 당시 응급실이 폐쇄되었어요. 산부인과도 소아과도 없는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죠. 지역의 사생활을 펼쳤을 때 응급실 정보가 바로 보이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아차나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해 ‘바퀴로 갈 수 있는 곳들’도 소개했고요.
(불키드) 서사와 이야기에는 힘이 있잖아요. 부록으로 주인공이 작품 내에서 이동한 동선을 통해 지역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요. 이 만화를 보시는 분들이 그 루트를 따라 지역을 여행할 것을 기대했고요. 이야기의 힘을 믿어서요.
| 지역의 독립 서점과도 최초 입고, 사인본 이벤트 등으로 적극적인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통해서 지역 문화와 상생하는 방법일까요?
(불친) <지역의 사생활 99>는 처음부터 독립 서점을 염두에 뒀어요. 예쁘고, 들고 다니기 편한 책을 기획했고요. 지역 독립서점의 매대를 관찰해보면, '아름답고 얇은 책'에 대한 수요가 있는 것 같았어요. 여행지에서 예쁜 표지를 들고 다니면 멋지잖아요.
(불키드) 지역의 독립서점을 갔을 때 책이 무거우면 사서 들고 다니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독립서점 에디션들은 책이 작은 경우가 많아요. <지역의 사생활 99>도 110페이지를 기본으로, 여행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어요. 독립서점을 좋아하기도 하고 같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먼저 프로젝트를 오픈하고 있어요. 독립 서점에서는 사인본 유무로도 판매량 차이가 꽤 나더라고요. 온라인 서점과 차별화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해서 가급적 사인본을 입고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삐약삐약북스의 독립 만화, 지역이라는 키워드는 거대 플랫폼과 자극적인 이야기, 그리고 AI 그림이 논란인 현재 웹툰 시장의 흐름과는 사뭇 다릅니다.
(불키드) 출판사 운영, 디자인, 편집 모두 저희 둘이서 해요. 모든 걸 둘이 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운영할 수 있어요. 소규모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점인 거죠.
(불친) 보통 책은 처음 발행된 시기에 잠깐 잘 팔리고 이후에는 지지부진해요. 그래도 삐약삐약북스의 책은 판매량이 꾸준해서 지금은 다소 어려워도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어요. 시장을 해외로 키우는 것도 고민하고 있어요. AI 같은 경우는 마냥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아요.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엄격히 따져야 하겠지만, 글을 쓰거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 AI를 활용하면 새로운 인사이트를 빠른 시간에 얻게 되더라고요.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하며, 배우며 성장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불키드) 저희는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를 인생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에 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의 아카이빙이 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의미가 깊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