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관계의 변화’가 자주 언급됩니다. 복지와 자선만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되고요. 그렇다면 관계와 연결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요? 해묵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관계와 연결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도움의 시간을 교환하고 저축하는 활동으로 관계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만나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사회문제를 대하는 새로운 상상력과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다른 관점을 발견하면 좋겠네요.
| 타임뱅크란 무엇인가?
시간을 거래하는 은행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돈을 주고받지 않고 이웃끼리 품앗이하듯이 도움과 도움을 주고받는 모임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모든 도움은 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저장한다. 예컨대 내가 지역 어르신을 위해서 1시간의 말벗 자원봉사를 했다면 우쿨렐레를 배우고 싶을 때 1시간만큼의 봉사를 받을 수 있다. 나의 봉사 시간만큼 필요할 때 쓸 수 있다.
| 기존 자원봉사와 다른 점은?
자원봉사, 복지서비스가 일방향 도로라면, 타임뱅크는 쌍방향 도로다. 기존의 제공자/수혜자, 봉사자/피봉사자의 관점이 아닌 수평적, 호혜적 관점에서 도움을 주고받는다. 상호 도움 주고받기를 통해서 관계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 어떻게 시작되었나?
타임뱅크는 1980년대 미국의 에드거 칸 박사가 설립했다. 에드거 칸은 흑인, 원주민, 빈곤층 등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심장 수술 후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도움을 주는 존재였던 그가 보호받는 존재로 바뀌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지 성찰했다. 소외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지 대상자, 수혜자 집단도 가족 혹은 이웃을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노동을 사회가 인정하고 보상한다면 역량을 갖추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국내는 대한성공회 김요나단 신부가 구미에서 시작했다. 김요나단 신부는 10년 동안 간병 봉사자를 양성/파견했다. 봉사 현장을 지켜보니 봉사자는 봉사만 하다가 지쳐 이탈하고, 봉사 받는 사람의 의존성, 무력감은 높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봉사 받는 사람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봉사자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갈등이 발생했다. 봉사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 2004년에 타임뱅크를 시작했다. 경북 구미의 산골 마을에서 노인 간 돌봄을 주고받고, 나눔 장터를 여는 작은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는 ‘노노케어’란 단어도 없던 시기다. 현재는 법인을 세워 ‘사랑고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1시간의 봉사당 ‘사랑고리’ 증표(화폐)를 한 개씩 받는다.
| 이곳, 타임뱅크 하우스(서대문구 포방터길 위치)는 어떤 곳인가?
홍제동 지역에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타임뱅크 활동을 진행했다. 공동체 활동을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이 중요했다. 타임뱅크 하우스의 회원은 노인, 아동, 장애인, 1인 가구 중년 남성 등 다양하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신청했으나 제외된 분, 낮에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장애인, 학원 다닐 형편은 안 되고 같이 놀 친구는 없는 청소년 등 사연도 다양하다. 가장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온다.
공간을 조성하고 초기에는 파리 날렸다(웃음). 그러나 모든 일은 첫 사례에서 시작한다. 지역에 사는 22살 장애 청년이 갈 곳 없어 동네를 배회하다가 타임뱅크 하우스 앞 벤치에서 쉬곤 했다. 청년에게 화분과 가구를 옮겨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활동을 한 후 시간 화폐를 발행했다. 이후 공간에 탁구대를 놓았고,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했다. 탁구에 좀 더 익숙한 어르신이 처음인 어르신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게 되더라. 탁구를 치는 어르신들 중 경기 민요를 잘하는 분이 있었다. 발달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경기민요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약 1시간 정도의 수업을 운영했다. 묘하게도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르신이 장애인에게 차근차근 소리를 가르쳤고, 아이는 수업 마지막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이런 방식으로 서로 돌보는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
| 타임뱅크의 개념을 현재의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사회적기업 모델과의 연계 사례가 있다. 사회적기업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한계에 직면한다. 도시락을 제조하는 사회적기업 ‘맛사랑’은 타임뱅크 형태의 주민 참여를 통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멸치를 다듬는 등의 재료 손질을 동네 어르신이 하고, 도시락을 받는 수혜자가 직접 배달한다. 이런 활동을 시간 화폐로 인정한다.
앞서 얘기한 노노케어 공동체 노인 돌봄도 하나의 사례다. 몸이 성한 어르신은 그렇지 않은 친구를 도와 병원에 함께 간다.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동료에게 약 먹을 시간을 제때제때 알려준다. 사랑방에 오지 못하는 노인에겐 도시락을 배달한다. 그렇게 하나의 느슨한 가족이 되었다.
공공복지와의 연계 사례도 있다. 구미의 어르신 사랑방 식사는 다른 노인(사랑방 이용 노인보다 연령이 10세 정도 연령이 낮은)이 11시~1시에 방문하여 준비/제공한다. 노인일자리지원사업을 통해서 채용된 노인이 급식도우미 역할을 한다. 급식 활동을 진행하는 노인에게는 인건비가 지급된다. 이후 관계가 쌓이니 도움을 주고받는 형태로 확장된다. 예컨대 사랑방 이용 노인이 급하게 이동 봉사가 필요할 때 급식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우미는 봉사를 진행한 후 ‘사랑고리’를 받는다. 일자리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공공복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 타임뱅크 운동이 전통적 복지 모델의 대안(혹은 보완재)이 될 수 있을까?
현재의 복지서비스는 공공 전달체계망 중심이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 경계가 뚜렷하고 제공자 관점으로 서비스가 설계되었다. 그리고 수혜자의 결핍, 부족, 빈곤 등의 특정한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 방식은 한계가 있다. 오래된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이루지 못했고, ‘고립’, ‘외로움’과 같은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현재 복지 체계가 가지는 장점과 효율성도 있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타임뱅크와 같은 ‘관계’ 중심의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법적으로 규정된 복지 대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각지대 영역을 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