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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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23.06.15
N인분의 삶을 사는 영케어러,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조기현 작가, 박재형 사무국장(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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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Table Talk people 29화 조기현 작가와 박재형 사무국장의 모습이 담긴 썸네일 이미지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읽어보신 분 있나요?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조기현 작가는 ‘영케어러’입니다. 이제 막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영케어러는 장애, 질병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청(소)년을 말합니다. 행복나눔재단은 지난 5월 25일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는 조기현 작가를 비롯해 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영케어러 지원 사업을 수행해온 박재형 사무국장, 함선유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정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본부장 등이 참석해 영케어러의 정의부터 시사점, 다양한 지원책의 필요성 등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23 SIT Conference

영케어러라는 명칭이 우리 사회에 거론되기 시작한 건 2~3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영케어러가 익숙하지 않다면 조손가정은 어떤가요? 부모가 부재한 청소년이 조부모와 함께 사는 형태의 가정에서 조부모의 간병이나 돌봄을 청소년이 하는 경우가 많죠. 조손가정으로만 이해했던 가족 돌봄 청(소)년이 바로 좁은 의미의 영케어러입니다. 청소년뿐 아니라, 조기현 작가와 같이 스무 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가족 구성원을 돌보게 된 청년 역시 영케어러에 포함되죠. 행복나눔재단이 인터뷰한 영케어러 도지나 씨는 두 명의 가족을 돌보는 영케어러입니다. 지나 씨는 뇌병변 장애를 얻은 어머니와 선천적 다운증후군인 외삼촌을 돌보느라 학업과 취업활동은 뒷전이 된 지 오래입니다.


영케어러는 낯선 이름과는 달리 그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13~34세 중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 청년은 3.6%~4.8%(보건복지부 실태조사, 2022), 즉 약 48만명 이상으로 추산되지만 사회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가시화되지 못한 거죠. 그렇다면, 영케어러는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갈까요? 먼저 조기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볼게요.  

N인분의 삶, 선택의 기로에 서는 영 케어러

조기현 작가는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가 오롯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아버지에 대한 돌봄을 포기해야 하는 양가일단의 상황에 놓이게 되었단 건데요. 아픈 몸으로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조 작가는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계비와 아버지 병원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복지 서비스는 유명무실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벌었던 돈이 2인 가구 기준소득을 초과한다는 이유 등으로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생계, 돌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위해 필요한 진로 이행의 삼중고를 짊어지고 조기현 작가는 아버지의 아버지로써 12년째 살아오고 있습니다.

2023 SIT Conference
[조기현 작가 발표 모습]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부는 작년 2022년 처음으로 영케어러 실태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만 13세부터 34세까지였고, 영케어러의 기준으로 치매, 중증질환, 장애, 정신질환 등이 있는 이를 돌보는 일이 6개월 이상 지속해왔는지, 주돌봄자 여부, 단독 돌봄자 여부, 돌봄시간 등이 포괄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케어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복지 요구는 생계지원이 꼽혔습니다. 곧 이어 의료지원이 2순위를 차지했죠. 돌봄 시간의 감소도 중요한 요구로 꼽혔습니다. 영케어러에게 돌봄이 부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족 돌봄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긍정한 비율이 높았고, 평균 주당 14.3시간 돌봄하기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원하는 시간 대비 주당 7.3시간을 돌봄에 더 할애해야 하는 과중한 책임이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심리적 어려움이 파악되었습니다. 삶이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22%로 일반 청년의 2배 이상으로 나타났고, 주돌봄자인 영케어러의 경우, 일반 청년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우울감 유병률은 약 7~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케어러를 위한 심리상담 등 정신질환 관련 지원이 시급합니다.

영케어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 생계지원 75.6%, 의료지원 74%, 우울감 유병률 일반청년의 7배 61.5%,
[영케어러 통계 인포그래픽]

전통적으로 ‘효’ 사상을 강조해온 한국은 아픈 부모를 돌보는 사람에게 효자, 효녀라는 명칭을 붙여주곤 합니다. 이 ‘효자’라는 꼬리표는 영케어러를 옭아매는 수많은 문제들을 가정 내의 작은 우환 정도로 축소합니다.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받을 기회를 차단하게 하기도 하죠. 그래서 조 작가는 솔직해지기 위해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썼고, 하나둘 연락을 주는 다른 영케어러들과 소통하면서 지지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인 영케어러들은 ‘n인분’이라는 이름의 자조모임을 결성해 돌봄 경험을 시로 써보기도 하고, 돌봄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언론과 인터뷰해 어려움을 알리고 필요한 지원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통해 영케어러들은 자신의 돌봄 경험이 학업과 미래 준비를 뒤처지게 한 쓸모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돌봄 경험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더 많은 실태 조사와 지원책 마련으로 영케어러가 집에만 숨어 있지 않고, 사회로 나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필요한 건 돌봄이 제대로 평가받는 사회

조기현 작가는 발표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 케어러가 겪는 문제는 과연 영 케어러만의 문제일까요?” 영케어러의 어려움은 ‘독박 돌봄’을 하는 사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평가절하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돌봄은 불행이나 피해이기 이전에 우리 삶의 기반입니다. 누구도,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주로 가정 내 여성이 전담하던 비공식 노동인 돌봄을 양지로 끌어올리고, 가치를 인정하여 높게 평가하고, 책임을 사회와 나눌 수 있다면 영케어러뿐 아니라 돌봄을 하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서 발표자로 참여한 박재형 광주서구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장은 광주 영케어러 지원사업을 구축해온 경험과 앞으로의 제안을 나눠주셨습니다. 영케어러 담론이 부상한 후 그 전에는 부재하던 영케어러 지원 시스템이 조금씩 구축되고 있는데요. 광주 서구의 경우, 지난 1년간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영케어러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2023 SIT Conference
[박재형 사무국장 발표 모습]

박 사무국장은 ‘영케어러’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면서 생각과 시각이 전환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케어러 사례의 하나인 조손가정을 지원한다고 하면 조부모를 지원해왔지만 지원의 대상이 조부모가 아니라 돌보는 청년이 되는 거죠. 기존 복지 체계에서 대상자로 부합하지 않는 청년들을 포함하기 위해 먼저 해외 사례를 파악했습니다. 약 3~5%를 영케어러로 추정하는 영미권에서는 다양한 지원 체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학교, 지자체, 병원이 함께하는 지원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죠.


하지만 북유럽권은 상대적으로 연구나 지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영케어러를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피해자'로 인식해, 별도의 지원 대상이라기보다 기존 제도를 통한 보호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최근에서야 영케어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북유럽 국가들은 영미권 대비 영케어러 인구 비중을 7~8% 정도로 높게 봅니다. 이는 돌봄의 영역을 넓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간병 등의 직접적 돌봄 외에도 방 청소, 설거지, 동생 등하교 돕기 등 돌봄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습니다. 광주 서구에서는 해외 사례 파악을 통해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 자격, 기준을 명시하는 법률 마련으로 지원 근거를 두고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돌봄과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술 부족, 돌봄 한계에 부딪히며 느끼는 본인의 절망감, 본인의 기회와 시간의 박탈. 이로 인한 대인관계의 위축 또, 돌봄으로 인한 학업과 진로의 포기, 경제활동의 중단, 이로 인한 생계 문제와 정신적 문제가 영케어러가 겪는 어려움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기존 복지 서비스만으로는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줄 수 없기에 박재형 사무국장은 주변 기관들에 협조를 구하고 공모 사업을 따내 지원 사업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공공에서는 구청, 의회, 교육청이 참여하여 행정 정보를 통해 영케어러를 찾고, 공적서비스를 연계하며, 지원조례를 제정하기로 했고, 9개 민간 기관이 참여해 영케어러를 발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광주 서구의 영케어러 지원 사업 모델 개요, 돌봄이 필요한
[광주 서구의 영케어러 지원 사업 모델 개요]

사업모델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케어러 발굴이 쉽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인 영케어러도 복지제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낮은데 담당자들마저 ‘영케어러가 누구를 말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의 반복이었던 거죠. 노부모를 부양하는 청년만 찾으려고 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만난 사례는 장애 가족을 돌보는 청년, 중독 문제를 가진 부모가 있는 청소년 등 다양했습니다. 기존 '조손가정'의 틀에서 벗어나 '돌봄 부담을 가진 청년과 청소년'으로 시야를 확장하자 영케어러가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첫 지원가정은 알코올중독 부모를 돌보는 청년이었습니다. 돌봄 부담 경감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파견했지만 3주 후 중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정서적 안정과 가사 지원인데, 해당 가정이 필요로 하는 건 집안 정리와 식사 지원이었습니다. 지원의 니즈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요양보호사 파견을 종료하고 가사도우미 지원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영케어러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각 대상자별 맞춤형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연령 규정, 애매한 소득, 동거여부 등에 따라 지원 대상에서 탈락되는 경우를 만나며 공공과 민간의 유연한 대처와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 간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광주 서구는 지자체 최초로 재정 지원 근거를 담은 영케어러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또한 민간협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의료사회복지사, 변호사, 노무사, 행정사 등 전문가를 지원 체계에 편입해 영케어러에게 필요한 도움이 연결되도록 말이죠.


그리고 올해 완공될 광주 서구청년센터를 거점으로 활용하여 청년간 교류를 통해 영케어러들을 찾고, 지원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할 예정입니다. 재원과 사람, 공간이 있다면 지속가능한 영케어러 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례 발표를 끝내며 박재형 사무국장은 강조했습니다. “기존 지원을 연결하는 것으로만은  부족합니다. 새로운 체계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영케어러는 우리사회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돌봄 위기 속 청년들이 마주한 문제를 보여줍니다.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4,50대의 부모님을 모시는 영케어러는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거기준선을 겨우 넘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케어러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교육, 일자리, 주거 등 다양한 청년 지원이 있지만, 가족 옆을 떠날 수 없는 영케어러들이 그런 기회를 활용할 기회가 과연 있을까요.”


보호받고 미래를 준비할 시기에 불가피하게 돌봄 상황에 처한 영케어러를 고려한 새로운 지원 체계 마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영케어러에 대한 정의와 사회적 지지체계 마련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N인분의 삶을 사는 영케어러, 돌봄 '독박'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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