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외국인 점원을 마주치는 일은 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죠.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이 24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20년 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인데요.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제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이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우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며, 같은 문화와 추억을 공유하며 자랐지만, 여전히 ‘외국인’ 또는 ‘미등록 체류자’라는 신분의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주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해 온 김사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끈질긴 노력 끝에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낸 과정이 담겨있어요.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동료들과 함께 이뤄낸 성과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 캠페인까지...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할 새로운 구성원들에 대한 통찰은 물론, 지난한 사회 변화를 위해 필요한 전략과 지속 가능한 활동의 동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도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처음 미등록 이주아동들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9년 전인 2006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 오랫동안 체류한 이주노동자들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경기도 안양에 있는 한 이주노동자 인권 단체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며 참여 관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단신으로 한국으로 건너와 일을 하면서 본국의 가족들에게 번 돈을 송금하고 있을 거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신분이었고, 따라서 아이들도 미등록 상태에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던 아스라,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제이미와 두 동생, 중학생 사춘기 소년이었던 태완을 그때 만났습니다. 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태어날 때, 돌잔치를 할 때, 아파서 병원에 갈 때, 함께 있어 주었습니다. 한 일 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부모들에게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왜 자기들을 인터뷰하려는 거냐는 부모들의 질문에 저는 논문을 쓰기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논문이 뭔데요?” “논문은 책 같은 거예요.” “그럼 그 책이 나오면 뭐가 달라져요? 우리 애들 비자 받을 수 있어요? 건강보험 가입할 수 있어요?” 그렇게 묻는 이들에게 저는 제가 책을 쓴다고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을 뒤로한 채 학교로 돌아갔지만, 논문을 쓰는 내내 제 머릿속에서는 이주노동자 부모들과 한 약속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논문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삶은 여전했습니다. 체류자격이 없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것도,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도 그대로였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연구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1년, 부산에 있는 이주와 인권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이주민의 인권을 위한 조사·연구와 제도개선 활동을 병행하는 유일한 NGO 연구소입니다.
연구소에서 제가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부산·경남 지역 미등록 이주민 건강권 실태조사였습니다.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또다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들을 만났습니다. 부모가 미등록이라고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도 받아주지 않는 대사관들, 종일 토하고 설사하다 축 늘어진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에 뛰어가도 보증금부터 요구하는 병원들, 아무리 정부 지침이 있다고 설명해도 미등록 이주아동은 받아줄 수 없다는 어린이집과 학교들. 미등록 이주아동의 상황은 5년 전과 똑같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 사이 정책의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육부는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중학교 편입학을 법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법무부는 2010년 ‘“불법체류” 아동의 학습권 지원 방안’이라는 지침을 발표해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미등록 이주아동과 그 부모에 대해 단속과 추방을 유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추방을 유예하기로 한 것일 뿐 체류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미등록으로 살아야 하는 사실은 변함없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나마 단속·추방 유예 조치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실제로 2012년 10월,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 미등록 이주아동이 출입국에 단속되어 나흘 만에 강제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반인권적인 아동의 강제추방을 규탄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자 법무부는 2013년 11월, ‘“불법체류” 아동의 학습권 지원 방안’의 대상을 고교 재학생까지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며 교육받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졸업과 동시에 강제퇴거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고교 1학년 학생의 강제퇴거를 계기로 저는 그 무렵 진행되고 있던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합류했습니다. 아동단체, 이주단체, 공익변호사 단체가 뜻을 모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이하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함께 법률안을 가다듬었습니다. 이주민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 의원이 법률안을 대표 발의해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 12월 18일,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자스민 의원을 비롯한 23명의 의원이 공동으로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에는 이주아동의 출생등록권, 교육권, 건강권, 보육권, 보호권은 물론 강제퇴거로부터의 보호 및 특별체류자격 부여에 관한 조항까지 담겼습니다. 저는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 활동가들과 함께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토론회와 간담회를 진행했고, 국회에서 기획전시전을 개최하고,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에 현판을 전달하고, 정책 브리프를 만들어 배포하고, 입법촉구서를 발송하는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서울에 머물며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 회의와 대국회 활동에 적극 참여했음에도 입법을 위한 단계를 하나씩 밟아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들이 반대 의견을 밝혔을 뿐 아니라, 반이주민·반다문화를 표방하는 보수단체들도 이주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법안 발의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해댔기 때문입니다.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의 인권을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던 반면, ‘국민’이 먼저고 ‘국민’만이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유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의원들을 압박했습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전문위원이 보고서를 통해 법 제정 이전에 사회적 합의나 국민적인 공감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되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저는 법 제정 추진 네트워크를 함께 했던 활동가들과, 예전부터 이주아동의 인권 옹호 활동에 헌신했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새롭게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이주아동 네트워크)’를 꾸려 새로운 방식의 활동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꾸려진 이주아동 네트워크는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포괄적인 기본법의 제정이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주아동의 권리를 하나씩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과 개별법의 개정에 집중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 아동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실리도록 하는 활동도 해나갔습니다. 제도의 개선이나 법률의 제·개정을 위해서는 우호적인 여론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주아동에게도 내국인 아동과 같은 보호와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인식은 쉽게 확산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보장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 또는 한국으로 이주한 것이 아동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전제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납득시키기 어려운 주제였습니다. 미등록 체류를 “불법체류”라고 부르며 범죄시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에게 미등록 체류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2017년 4월, 페버라는 이름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일하던 공장에서 단속되어 외국인보호소에 갇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페버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18세 청소년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출입국에 단속된 것이었습니다. 페버를 위해 이주아동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던 공익변호사들이 나섰습니다. 관할 출입국이 내린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1년 정도 걸린 재판 끝에 페버에게 내려진 강제퇴거명령과 보호명령을 취소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의 첫 승소였습니다.
당시 판결문은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무조건적인 강제퇴거가 가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이 사건 원고와 같이 적법하게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였다가 그 부모가 체류자격을 상실함으로써 체류자격을 잃게 된 사람에 대한 인권적·인도적·경제적 관점에서의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 “원고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출생하여 현재까지 사실상 오직 대한민국만을 그 지역적·사회적 터전으로 삼아 살아 온 사람을 무작정 다른 나라로 나가라고 내쫓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생존권을 보장하여야 할 문명국가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대한민국은 국내에 사회적 기반을 형성한 원고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그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12년의 정규교육과정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성장한 원고를 이제 와서 내보내는 것은 그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고려할 때 [국가적인] 큰 손실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정부가 원고와 같은 사안에서 국적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 필요성이 크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온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강제퇴거가 사실 “문명국가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 것이며, 이런 아동들에게 국내 체류를 허용하는 것은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한 판결문은 저희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