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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작은 블록, 큰 디딤돌 : 레고로 넘는 일상의 문턱
브릭웨이브 주성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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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앞 문턱에서 걸음을 되돌려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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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덴마크의 작은 장난감 회사에서 시작된 레고는 이제 전 세계에서 매년 240억 개의 블록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레고블록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10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레고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 그 많던블록들은 분리수거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만약 이 작은 블록들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문턱을 넘을 수 있는큰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브릭웨이브의 주성희 활동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버려질 뻔한 레고 블록들이 휠체어 경사로로 변신하면서, 단순한 재활용을넘어 사회적 접근성을 높이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탄생한 것이죠. "접근성 문제를 무겁지 않게,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그의 철학처럼, 색색깔 레고 경사로는 회색 도시에 컬러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때로는완벽한 시설보다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이, 그리고 "그냥해보자"라는 단순한 용기가 더 큰 접근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말이에요.


휠체어와 레고가 만나 그리는 새로운 시작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브릭웨이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저는 수동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중에서도접근성과 이동에 특히 흥미를 느꼈어요. 이 일 자체가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이동권과 접근성 향상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브릭웨이브까지 시작하게 됐어요.

 

레고와 연결된 건 제가 원래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레고를 맞추는 걸 취미로 했기 때문이에요. 레고는 보통 어린아이들이 즐기는 장난감이죠. 어린이들이 성장하고 일정 나이가 되어 관심이 없어지면 버리는 경우가 많더라고요.하지만 레고는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자재라서 새로운 용도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 독일의 ‘리타 할머니’*가 레고로 경사로를 만들어 세계 곳곳을 여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 20여년 전 교통사고 이후 휠체어 사용자가 된 Rita Ebel은 레고 블록으로 휠체어 경사로를만들어 공공 공간의 접근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https://www.lafent.com/inews/news_view_print.html?news_id=127207)

| 요즘 전동 휠체어나 동력보조장치 등 이동 보조기기가 많이 등장했는데요. 수동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특별한이유가 있나요?

 

솔직하게 말하면 전동 휠체어를 탔을 때 너무 무기력해 보여서 끌리지 않았어요(웃음). 비상용으로 휠체어 동력보조장치도 가지고 있긴 한데, 배터리 양을 항상 신경 쓰고 외출할 때도 챙겨야 하다보니 손이 잘 가지 않더라고요. 반면 수동 휠체어는 크기가 작아서 비장애인과 동행할 때 턱 한두 개 정도는 함께 들어서 이동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수동 휠체어는 기능과 근력이 있어야 탈 수 있는 거라서, 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죠. 4살 때 다친 이후, 25년간 지켜온 수동 휠체어에 대한 자존심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웠어요.

|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권, 접근성 향상을 위한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요. 성희 님에게 이동권과 접근성은 어떤의미인가요? 구체적인 사례도 궁금합니다.

 

저에게 이동권은 '소통'이에요. 이동하고 접근할 수 있어야 장애인, 비장애인, 어린이 누구든 어디서나 만날 수 있거든요.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태도, 서로 만나는 경험들이 모두 가능해져서 결국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소통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처음에는 이동권과 접근성을 물리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계속 파고들다 보니 가전제품, 전자제품, 심지어 텀블러에서도접근성을 찾을 수 있더라고요. 이제는 더 넓은 의미의 접근성을 생각하게 됐어요.

 

사단법인 무의에서 근무하던 당시, LG전자와 함께 '볼드무브'라는 사업을 진행했어요. 장애인 당사자들이가전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고 개선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커뮤니티였죠. 처음엔 “터치스크린이 불편하겠지”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매장에 가서 냉장고들을 열어보니 정말 다르더라고요. 요즘 나오는 최신 냉장고들은 위가 냉장실, 아래가 냉동실인 제품이 많잖아요. 실제로 매장에 가보니,제가 사용하기 어려웠어요. 왼쪽이 냉동실, 오른쪽이 냉장실이던 과거 냉장고와는 달리, 냉동고가 아래쪽에 있으니 휠체어 때문에 열기 불편하고, 또 냉장실의 위쪽 선반은 손이 닿지 않아서 죽은 공간이 되더라고요. 비슷하게 정수기도 스크린이 위에 있는 구조면 저 같은 휠체어 사용자는 버튼이 보이지 않고요. 이렇게 생활에서 하나씩 만나는 것들이 모두 접근성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 활동을 통해 만든 영상들, 가전 사용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담았다. | ⓒ브릭웨이브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귀여움

| 브릭웨이브라는 이름은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나요?

브릭은 저희 경사로에 사용되는 레고 블록을 의미하고, 웨이브를 합쳐봤어요. 웨이브는 자유롭고 흘러가는 느낌이 있어서 자유롭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움직이는 특성이 휠체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자유로운 블록'이라는 의미도 가능한데, 일부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했어요. 브릭으로 만드는 웨이브라고 볼 수도 있고, 네모난 것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고 볼 수도 있어요. 저희 팀이 추구하는 가치는 접근성이나 이동권 문제를 무겁지 않게, 잘 모르는 사람들도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거예요.

 

형형색색의 레고로 귀여움을 한층 더한 브릭웨이브의 휠체어 경사로 | ⓒ행복나눔재단

| 브릭웨이브의 소개 멘트 중 '장애인도 핫플레이스에 자유롭게 가고 싶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어요. 이 문구가 나오게 된 배경을 말씀해 주세요.

제가 성수동에서 일했는데, 성수동은 과거 공장이거나 가정집이었던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점포들이 아주 많거든요. 이게 성수동만의 분위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보니, 접근성 관련 법 적용에서는 살짝 비껴있어요.

 

건물을 증축하거나 새로 개조하지 않는 이상 접근성 기준을 충족할 의무가 없어서, 아무리 핫플레이스가 새로 생겨도 턱 하나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 송리단길, 용리단길, 문래동도 마찬가지고요. 유명한 상점이나 팝업스토어가 많은 성수동에서 일하면서도 근처 맛집에 가기 위한 접근이 어려웠어요. 반지하나 높은 턱이 있는 곳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장애인은 핫플레이스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다'는 현실을 표현하게 됐어요.

| 레고 경사로는 어떻게 만들게 되나요? 전체 과정이 궁금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레고를 확보하는 거예요. 주로 당근마켓에서 검색하는데요. 좋은 일을 한다고 설명해서 낮은 가격에 구입하거나 무료로 받아와요. 부모님들이 집에 굴러다니는 레고 때문에 골치 아파하시거든요. 발에 밟히고 정리도 안 되고요. 그렇게 50kg 정도 모으면 분류 작업을 시작해요. 블록들은 브랜드에 따라 호환이 달라져요. 레고는 레고끼리, 국산은 국산 블록끼리만 호환되죠.  네 칸짜리, 여섯 칸짜리, 두 칸 높이, 한 칸 얇은 것 등 필요한 브릭들만 골라서 분류해요. 그리고 조립을 시작하죠. 저는 경사로의 설계를 외우고 있어서 하루 이틀이면 만들 수 있지만, 처음 하는 사람들은 3~4일 정도 걸려요.가장 넓은 베이스 판을 바닥에 깔고 낮은 칸부터 시작해 한 단씩 쌓아 올려요. 레고는 쌓을수록 더 큰 힘을 견딜 수 있어서 완성된 경사로는 꽤무거운 중량도 견딜 수 있어요. 저희 경사로가 코끼리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을 정도죠(웃음).

(좌)사이즈와 용도별로 분류된 블록들, (우)경사로를 조립하는 과정 | ⓒ브릭웨이브

| 경사로의 구체적인 규격이나 제작 기준이 있나요?

 

전체적인 구조는 독일 ‘리타 할머니’의 설계를 따라가요. 기존에도 레고로 경사로를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고 알고 있어요. 경사로 내부에서 지지해 주는 구조와 휠체어가 잘 올라갈 수 있는 규격이 중요한데, ‘리타 할머니’의 설계도 없이는 어려웠던 거죠. 그러던 중 장애 당사자 모임에서 만나 협업해 온 분이 리타 할머니를 소개해주셨어요. 그래서 완성형 경사로를 만들 수 있었어요.물론 휠체어 사용자들이 계속 테스트를 하면서 보완하고 개선해 나갔죠.

 

완성된 경사로는 대략 4kg 정도 나가요. 무겁긴 하지만 이보다 가볍게 만들 수는 없어요. 안전성 때문이거든요.턱 높이에 따라 다르게 제작하는데, 가장 흔한 턱 높이들을 기준으로 해요. 기본 보도블록이 8cm이고, 옛날 건물들은 보통 10cm, 그리고 15cm까지 다양해요.

 

주문이 들어오면 그 높이에 맞춰서 제작하지만, 미리 만들어두는 기성품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5cm와 15cm 높이로 만들어요. 지금까지 브릭웨이브 활동을 하면서 120-150kg 정도의 블록을 수집했는데,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였어요.나머지는 호환이 안 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라 제외해야 하거든요.

 

 

| 일반적인 경사로와 레고 경사로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일단 레고 경사로를 만들고 나면 정말 애착이 생겨요. 약간 '내 새끼' 같은 마음이 들어서 먼지 털어주고, 부품 하나 떨어지면 슬프고, 보수해줘야 하는 그런 감정이 생기거든요. 사장님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일반 경사로와 달리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있어서 의인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귀엽죠.

 

기능적으로 살펴보면 일반 경사로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시중에서 판매하는 경사로도 표면이 오돌토돌해요.마찰력 때문에 미끄럽지 않게 만든 건데, 레고도 같은 원리예요. 너무 매끄러우면 오히려 미끄러져서 위험하니까 적당한 마찰이 필요한 거죠. 레고 특유의 돌기들이 휠체어에게는 더 안전한 마찰력을 제공하는 셈이에요. 이러한 마찰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휠체어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보행자에게도안전한 진입로를 제공해 줍니다.

 

레고 자체의 돌기가 마찰력이 되어 휠체어와 보행자 진입의 안전성을 더합니다. | ⓒ브릭웨이브

사업적으로는 단순히 경사로만 파는 게 아니라 가게 브랜딩에도 활용할 수 있게 계획하고 있어요.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가게 상표를 경사로 위에 보이게 하는 것까지 구상했거든요. 사장님들도 돈 주고 사고 싶을 만한 브랜딩 요소가 되는 거죠. 현재는 기부 형태로 설치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판매도 계획하고 있어요. 다만 기성품 경사로가 워낙 저렴해서 단가를 맞추는 게 고민이에요. 키트 형태로 판매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안전성에 대한 책임 문제가 있어서 신중하게 검토 중이에요.

작은 블록, 큰 디딤돌 : 레고로 넘는 일상의 문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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