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송된 예능 '콩콩팜팜' 속 배우들은 목장에 던져져 소똥을 치우고 젖소 탈출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농촌 기술 연수'를 마치고 다시 카메라 밖 일상으로 돌아갔죠. 배우들의 고생은 진짜였지만, 결말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낯선 노동의 풍경이 예능이 될 수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시청자도, 출연자도 알고 있으니까요.
이번 호의 주인공에게는 '연수 마지막 날'이 없었습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정작 그를 위한 자리도, 부를 이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회의 참석자 명단에 적힌 '청년활동가'라는 낯선 소속을 보고 스스로에게 되묻던 순간부터, 없는 직장을 만들고 마을 시장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대본도 제작진도 없이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어느 U턴정착자의 진짜 팜스테이를 지금 소개합니다.


스마트폰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풀을 끓여 소밥을 주던 추억을 가지고 있고, 비 오는 날에는 진흙 물웅덩이에서 지렁이를 잡고 놀았다. 공중전화와 삐삐, 모토로라 휴대폰, 가로본능까지 무선통신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10대를 보냈고, 20대에는 싸이월드 문화와 스마트폰 혁명, 그리고 스마트워크를 추구하는 직장생활을 했다. 기술발전과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온 90년대생이다.
30대가 되어서는 서울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시골 농부인 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거창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햇수로 7년째다. 어릴 적 추억 속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농촌의 일상을 살며, 시대의 변화 앞 ‘위기의 농촌’ 지역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작은 실행들을 해나가고 있다.
U턴의 배경에는 성장과 변화에 대한 욕구, 그리고 중소농 규모로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사회적연대경제 영역에서 크라우드펀딩 매니저와 사회공헌사업 기획·지원 업무를 했다. 그 일을 하며 도시에서 농업·농촌의 문제를 다루는 창업가들의 사례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이상한 자성이 찾아왔다. 나는 농촌 출신이고, 심지어 농부의 딸인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이 바로 나온 건 아니었다. “내가 농촌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도, 공간도, 사회적·인적 네트워크도 전무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농촌에는 내가 원하는 직장도, 당장 일할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것. 결국 나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월세 30만 원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으면서, 거창에서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부모님의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팔아보기 시작했고, 농촌개발사업의 코디네이터로 합류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어느 날 농업기술센터 회의 참석자 명단에 내 소속이 '청년활동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에게 “제가 청년활동가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지역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그전까지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주변 어르신들이 어려워하는 행정업무나 정보 탐색을 도와드리곤 했다.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지역 사람들과 단체들의 활동에 전방위로 조금씩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 '활동가'는 비영리 영역에서 특정 목적의 활동을 지지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었다. 농촌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분명 비영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움직이는가” 라는 목적성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코디네이터로서 맡은 업무 중 하나는 지역공동체가 조직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일이었다. 첫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10회 차 중 2회 차 수업이 끝났을 때, 한 주민분이 찾아오셨다. “백코디님은 이 사업 끝나면 서울로 가세요?”, “이전에도 이런 교육을 서울 컨설턴트들이 와서 했는데, 교육 끝나고 나니 싹 가버리고, 뭐 좀 해보려니깐 물어볼 데도 없고... 이런 교육 백날 하면 뭐 합니까” 안타까움과 하소연이 섞인 그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대화를 계기로 지역 안에 있었던 주민조직화 사업과 몇몇 지원사업,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는 단체들의 현황을 찾아봤다. 인구소멸 위기의 농촌지역에는 수많은 지원사업과 공간사업들이 존재한다. 결국 지역주민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축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기초교육 이후 현장에서 주민조직의 성장을 곁에서 지원해 줄 조직과 프로그램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교육·컨설팅 기관은 하루 와서 교육하고 떠나가고, 사업계획서 한 장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생존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농촌개발사업 코디네이터로 3년을 활동한 뒤, 사업 기한 종료와 함께 운영조직도 지역에서 사라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 3년은 형식적인 사업 수행이 아니라, 운영조직과 코디네이터와 지역주민 모두가 함께한 교육과 공동체 활동 속에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은 시간이었다. 특히 서울 마르쉐를 벤치마킹해 2년간 매달 운영해 온 지역의 농부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 농가의 판로가 되고 농업·농촌의 다양성을 사람들과 나누는 장이었다.
모두가 농부시장이 없어질까 봐 걱정할 때, 조직을 갖추고 이를 추진할 주축이 필요했다. 코디네이터를 함께했던 동료와 지역의 연결점이 되겠다는 목표로 2024년 농촌문화기획사 로컬로우를 창업했다. 창업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수익모델과 비즈니스모델을 체계적으로 구상했다기보다는 지금처럼 지역의 연결 속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농업·농촌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재능과 이야기를 거창의 자랑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을 만들어갔다.
농부시장은 여전히 4년째 운영 중이다. 10여 개 농가가 중심 네트워크로 구성됐고, 30여 회 넘게 진행됐다.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을 경험할 수 있는 '농부의 식탁', 회차마다 다른 농촌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농가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매번 고민하는 질문은 비슷하다. 농부시장이 어떤 콘텐츠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건강한 먹거리와 식탁까지의 연결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볼까. 지역의 소비자 인식과 시장 규모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대구 지역 마켓과의 연결로 2년째 활동을 확장하고 있고, 도시 소비자가 알아보는 농가의 가치만큼 거창에서도 농가 팬덤 문화와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이어지는 과제다.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다. 거창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로컬로우'가 운영하고 있고, 올해로 3년째다. 5박 6일간 지역에 머물면서 각 지역의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 이후 지역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비빌언덕을 만드는 것이 사업 목적이다.
'농촌, 청년, 여성'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나는 당사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농촌에 정착했다는 것뿐이다. 로컬리티와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에 관심 있는 2030 여성 참여자들은 다수가 미혼이고, 경쟁적인 도시 생활의 피로감을 느끼며, 인생의 어느 시기에 찾아온 삶의 방향성과 주도권을 찾는 고민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농촌 공간과 환경이 주는 생태적 감수성, 느슨한 연대를 통한 관계의 안전망, 거기에 취향이 반영된 일까지 더해진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