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굴렀던 순간,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메뉴판을 이해하지 못해 대충 손가락으로 아무거나 가리켜본 경험, 길을 잃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 발걸음만 돌렸던 기억. 다행히 여행은 며칠 지나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익숙한 언어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만약 그 답답함이 며칠이 아니라 몇 년째 계속된다면, 그것도 여행이 아니라 병원 진료실이나 행정복지센터, 경찰서 같은 곳에서라면 어떨까요.
호모인테르는 10년 남짓 바로 그런 순간 속에 있는 이주민과 난민 곁을 지켜온 단체입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워온 셈이죠. 그 답을 이어지는 글에서 만나보세요.


호모인테르는 처음부터 완성된 답이나 정해진 사업 모델을 가지고 시작한 조직이 아니었다. 출발점은 연구실에서 세운 가설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한 경험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주민과 난민이 병원과 학교,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서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모습을 수없이 만났다. 현장에서 점점 분명해진 사실은 하나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가 다른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연구로 이어졌다. 2017년 서울시NPO지원센터 연구지원사업인 '활력향연' 1기에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발견한 질문을 함께 탐구하고 실천하는 호모인테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후 활동과 연구를 이어갈수록 통역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와 접근성, 정보와 권력의 불균형, 통역인의 돌봄, 그리고 제도의 공백까지 연결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 가지 질문을 따라간다. 통역은 누가 하는가, 그 자리에 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그 통역인은 누가 돌보는가.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공서비스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번역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권리, 제도와 공동체를 연결하는 사회적 기반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모인테르가 공공서비스통역 교육을 진행할 때 참여자들에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통역은 누가 하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잠시 당황한다. 너무 쉬운 질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교육 현장에서 돌아온 답도 거의 한결같았다.
“통역사가 합니다.”
물론 틀린 답은 아니다. 통역사가 통역을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장에 들어가 보니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통역'과 실제 이주민과 난민이 경험하는 '통역'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서비스통역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흔히 '통역'이라고 하면 국제회의장의 동시통역 부스나 정상회담을 떠올린다. 이러한 회의통역(conference interpreting)에서는 발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통역사는 발화자의 메시지를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하며, 자신의 존재는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는다. 통역사가 부스 안에서 일하고, 청중은 얼굴보다 목소리만 듣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호모인테르가 현장에서 만난 통역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병원 진료실, 행정복지센터 창구, 출입국기관, 경찰서, 학교 상담실. 이주민이나 난민이 의료진, 공무원, 교사와 마주 앉아 자신의 삶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였다. 이러한 통역을 국제적으로는 공공서비스통역(Public Service Interpreting, PSI) 또는 지역사회통역(Community Interpreting)이라고 부른다. 국제표준화기구(ISO) 역시 공공서비스통역을 회의통역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전문 영역으로 다루고 있으며, 필요한 역량과 운영 원칙을 별도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¹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통역'이지만, 두 영역은 대화의 구조부터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공공서비스통역이 대면으로, 그것도 삼자 간의 대화(trialogue)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의료진이나 공무원과 이주민 당사자 사이에 함께 앉아, 세 사람이 하나의 대화를 만들어간다. 회의통역에서 통역사가 일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에 가깝다면, 공공서비스통역의 통역인은 정보 전달자인 동시에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대화의 한 축이 된다. 통역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때로는 당사자보다 먼저 놀라거나 웃으며 다른 발화자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두 사람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정보의 수준과 제도적 권한을 가진 세 사람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행정복지센터에서 아동수당을 신청하는 한 이주민 여성을 떠올려 보자. 공무원은 자신에게 익숙한 절차를 빠르게 설명하지만, 신청자는 왜 이 서류가 필요한지 계속 묻는다.
이때 통역인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무원에게 조금 천천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고, 신청자의 반복되는 질문이 이해력 부족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와 절차를 확인하려는 과정임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이 순간 통역인은 단어만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대화의 속도와 리듬, 참여의 기회를 이어주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공공서비스통역은 통역인 한 사람의 역량만으로 잘 이루어질 수 없다. 공무원과 의료진도 통역이 함께하는 대화의 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이주민 당사자 역시 통역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에 통역할 수 있는 길이로 말하고, 통역인이 아니라 당사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며, 전문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삼자 대화는 제대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오해를 자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은 “두 언어를 할 줄 아니까 통역도 잘하겠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와 공공서비스통역인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두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통역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통역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통역에는 언어 능력뿐 아니라 윤리적 판단, 문화적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능력,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상호문화적 감수성이 함께 요구된다.
회의통역이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에 가깝다면, 공공서비스통역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호모인테르는 공공서비스통역을 “통역을 위한 통역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통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게 조금씩 넓어졌다. 통역은 분명 통역인이 한다. 그러나 좋은 공공서비스통역은 통역인 혼자 만들 수 없다. 공공서비스 제공자와 통역인, 이주민 당사자가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함께 대화에 참여할 때, 비로소 통역은 단순한 언어의 번역을 넘어 한 사람의 권리와 연결되는 소통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역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 답하고 나자 또 다른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공서비스통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수록, 정작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2014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프랑스에서부터 이어온 난민 지원 경험과 심리사회적 지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국내 여러 난민지원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심리지원이었지만, 현장에서 가장 먼저 요청받은 것은 상담이 아니라 언어였다. 특히 아프리카 출신 난민 가운데는 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을 위한 통역은 늘 부족했다. 처음에는 법률 상담이나 난민 인정 절차를 위한 통역 요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통역은 난민지원단체 안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병원과 학교, 행정기관, 부동산 등 이주민의 일상 전반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어 장벽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삶 곳곳에 놓여 있었다.

호모인테르의 공공서비스통역 교육 워크숍에서는 현직 통역인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다. 그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늦은 밤, 출산을 앞둔 한 이주여성이 응급실에 도착했지만 산모의 언어를 아는 의료진도, 대기 중인 통역인도 없었다. 결국 지역 이주민 공동체를 통해 가까스로 전화 통역이 연결되었고, 한 통역인이 밤새 의료진과 산모 사이를 오가며 출산 과정을 함께했다. 의료 용어에 대한 사전 교육도, 응급 상황을 대비한 훈련도, 통역을 마친 뒤 경험을 돌아보거나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통역인은 워크숍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 생명이 무사히 태어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지금도 큰 보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개인의 선의와 책임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서비스통역인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교육받고, 안전하게 활동하며,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 우리 사회 공공서비스통역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통역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소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공공서비스통역인으로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통역 역량을 검증하고 공공서비스에 필요한 윤리와 절차를 배우는 교육,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원과 보상 체계는 여전히 부족했다. 결국 이것은 단순한 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 인권(language rights)의 문제였다.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의료·교육·행정·사법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과 권리, 삶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통로가 막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현실 앞에서 호모인테르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필요한 순간마다 통역인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연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결이 반복 가능하고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호모인테르는 공공서비스통역 교육과 연구를 시작했다. 언어 역량을 가진 이주배경 인력을 발굴하고, 통역 윤리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이해, 실제 사례를 함께 교육하며 '우연히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공공서비스통역인'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통역인을 한 명 키운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직무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언어 때문에 자신의 권리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와 사람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든 공공서비스에는 두 가지 질문이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서비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지만 통역인을 교육하고 현장에 세우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질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통역이 필요한 사람의 권리에는 주목했지만, 그들의 가장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통역인의 경험은 충분히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렇게 세 번째 질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