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은 그런 날이 있어요. 딱히 볼 것도 없는데 유튜브를 틀어놓고, 밥도 대충 때우고, 누워서 시간을 보내버린 날. 저녁이 되면 '오늘 하루 날렸다'는 기분이 들면서도, 뭐 어때 싶기도 하죠.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하루'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어요.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도 똑같은 하루였고, 아마 내일도 비슷할 거예요. 유튜브를 끄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니까, 그냥 틀어두는 거죠.
사회적 고립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취업이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는 조직을 나온 직후에, 누군가는 혼자 밥을 챙겨 먹지 못하게 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고민정거장의 안예슬 대표는 그 시간을 두 번 통과했고, 그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고, 이제는 그 사람들 곁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어요. 오늘은 '청년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고립의 긴 터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터널 끝에 정거장을 만든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지금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히스토리도 함께 설명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민정거장’이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안예슬입니다.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단행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고립청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죠. 처음부터 고립청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대학 졸업도 미루고 하루 종일 TV만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첫 직장으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라는 조직에서 일하게 됐어요. 그때 처음 청년의 사회적 고립이라는 의제를 만났죠. 그리고 제가 무기력하게 보냈던 시간들이 ‘고립’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담당 사업을 하면서 고립 청년들을 직접 만나고, 관련 자료도 만들면서 이게 되게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직을 나오면서 두 번째 고립에 빠졌어요. 고립 청년을 지원하던 사람이 고립 당사자가 된 거예요. 그때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겉으로는 뭔가 하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 고립 상태였어요. 엄청 무기력했었죠. 당시 논문 주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 동료가 “사회적 고립을 해보”라고 권유했어요. 저만큼 당사자를 많이 만나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말도 덧붙였는데요. 맞더라고요. 그렇게 논문을 쓰고, 책도 쓰고,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고립 청년들의 어려움을 들여다보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고민정거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두 번의 고립을 겪으셨다고 했는데요. 각각 어떤 시기였나요?
첫 번째는 대학 학기를 마무리했는데 취업이 안 되던 시기였어요. 계속 시도를 해도 잘 안 되니까 어느 순간 너무 무기력해진 거예요. 하루 종일 TV를 보다 낮에 잠들고, 낮밤이 바뀌고, 새벽에 죄책감을 못 이기고 이력서 하나를 간신히 어디 넣어보고. 그런 생활을 한 2년 가까이 한 것 같아요. 가족이랑 같이 살던 때라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었는데, 그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거죠.
두 번째는 훨씬 힘들었어요. 혼자 살면서 겪은 거라 건강관리도 잘 안 됐거든요. 계속 누워 있으니까 배가 고프지도 않고, 먹어야 한다는 감각 자체가 없어졌던 것 같아요. 살이 엄청 빠졌고, 그때 섭식 장애 이야기들이 되게 가깝게 느껴졌어요. 유튜브를 달고 살 때였는데, 화면을 끄면 제가 보이잖아요. 내 상태를 마주해야 되니까 그럴 용기가 없었어요. 양치하러 화장실에 갈 때도 유튜브를 세워놓고 보면서 갔는데,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딱 봤어요. 되게 초췌하고 메마른 모습이 보였어요. 그때 '내 상태가 지금 좋지 않구나'를 처음 감각했던 것 같아요.
| 고립을 지원하던 사람이 당사자가 됐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스스로 그 상태를 깨달으셨나요?
깨달았다기보다 감각했다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조직에서 일할 때는 저도 모르게 청년 당사자성을 많이 잃어버렸던 것 같거든요. 행정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태도와 시선을 탑재하다 보니까, 내가 청년 당사자라는 감각을 좀 잊고 살았던 거예요. 근데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고, 다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논문 자료를 들여다보니까 제가 다르지 않은 상태인 거예요. 내가 연구하는 사람들이랑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걸, 그 시기에 좀 감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연구하고 마주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립’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데 문턱이 낮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고립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근데 보통은 “내가 고립상태구나”라고 인정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거든요. 많은 청년들이 고립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곤 하죠.
| 고립 시기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나요? 그 당시 타인을 마주하는 건 어떠셨나요?
일주일에 5~6일은 거의 누워 있었어요. 하루에 1시간 정도 간신히 책상에 기어 올라가서 논문을 조금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써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미친 듯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논문이 어떻게 완성됐는지 저도 진짜 의문이었지만, 그 조각 같은 시간들이 모여서 완성된 것 같아요. 그나마 규칙적인 시간을 보냈다면 그건 고양이 덕분이에요. 퇴사 직전에 입양한 고양이와 저녁 8시에는 꼭 놀아줘야 했거든요.
고양이를 제외하고 타인을 마주하는 건 그 자체로 너무 큰 일이었어요. 한 번 밖에 나갔다 오면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할 만큼 에너지를 많이 써서요. 대학원 수업 한 번 갔다 오면 이틀, 사흘은 아무것도 못 했거든요.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밖에 나가면 의식해야 되는 것들에 에너지를 다 써야 되니까 더 집에만 있게 되는 거죠. 원래 수업을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고립 상태의 청년들이 프로그램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걸 이해해요. 내 컨디션이 감당이 안 되어서 그랬을 거라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 고립이라고 하면 '컴퓨터 앞에 앉은 청년'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여성 고립청년이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요?
노동 시장 얘기와 맞닿아 있어요. 노동 시장의 스테레오 타입 자체가 남성 청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일하지 않는 청년', '고립 청년' 하면 자연스럽게 남성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죠. 그런데 여성 청년들, 특히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는 돌봄 노동을 굉장히 많이 해요. 집에 있는데 집안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래도 남성 청년보다 그런 압박이 있고, 그러니까 겉에서 보면 이 사람이 고립 상태인지 아닌지 잘 보이지 않아요.

인터뷰했던 참여자 중에 오빠랑 둘인데 자기에게만 집안일을 시킨다는 분이 계셨어요. 근데 그분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막내라서' 당연히 본인이 집안일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계셨거든요. 제가 책을 쓰면서 생각해 봤는데, 만약 오빠가 아니라 언니가 있었다면 언니가 100% 했을 것 같은 거예요. 언니가 첫째니까요.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거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신적 노동인데요. 집에 있다 보면 다른 가족들이 이 사람에게 자기 스트레스를 표출하기도 해요. 그래서 가족의 영향 그리고 가족 감정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게 되는 구조를 가지게 돼요.
| 연구를 통해 여러 여성 고립청년을 만났는데, 공통점이나 예상치 못하게 발견한 지점이 있으셨나요?
가장 놀라운 한편 짠했던 건, 자기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는 거였어요. 거의 모두가 그랬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냐”라고 물으면 다들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왜 짠하냐면, 이 분들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데, 정작 자기 얘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가장 많이 돌보는 위치에 본인을 가져다 놓을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도 들더라고요. 이게 제가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책을 쓰게 된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했어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건, 어쨌든 듣는 행위잖아요.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던,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고 싶었어요.

| 책에서 '고립을 견디는 과정은 개인적이지만, 고립에 접어드는 과정은 너무나 사회적이다'라고 하셨어요. 여성 청년이 고립으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경로를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진입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계속 비정규직 지위에 있거나, 실업 상태로 이동하는 비율도 높아져요. 능력 있는 여성들도 자유롭지 않아요. 회사에서 유리 천장을 마주한 여성들은 조직을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아요. 프리랜서의 세계 역시 불안정하죠. 비영리 조직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견고하기도 합니다. 조직 안에서 실무는 다 하지만 정작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는 올라가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진 청년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요.
여기에 가족의 영향도 큽니다. 고립 위기의 청년들은 관계망이 좁기 때문에 가족 영향을 많이 받고, 그 가족의 소득 수준이 이 사람의 진로와 인적 자원까지 결정해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20대를 돌이켜보면 계급 사다리를 이동하기 위해 굉장히 분투하며 살아왔는데요. 결국 그걸 넘지 못했다는 걸 연구 작업을 하며 깨달았어요. 이 시기에 필요한 시간과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원가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사람의 미래가 달라지죠. 그래서 “누구나 고립될 수 있다”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고립이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2025년 임금노동자 중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50.7%이며, 남성은 33.7%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202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