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굿 윌 헌팅》에는 오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지만 세상을 향해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근 청년 윌 앞에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속수무책으로 물러납니다. 그런데 심리치료사 숀은 다릅니다. 숀 역시 살아오면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기에 이 청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때로 어떤 처방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증명합니다.
이번 호는 저희가 기획한 '청년 시리즈' 3부작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편에서 무기력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위기 청소년이 어떻게 위기 청년이 되는지, 그 과정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온 한 활동가의 기록은 읽는 내내 묵직하게 무언가를 건드립니다.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겠다는 오래된 결심. 이번 이야기를 천천히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관악교육복지센터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교육복지 전문기관이다. 경제적, 문화적, 그 밖의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일을 한다. 2026년 현재 관내 40개 유·초·중·고를 지원하며, 종사자 1명이 10개 학교, 100명 내외의 학생을 담당한다. 작년 한 해에만 900명 이상의 어린이·청소년과 만났다. 이 글은 그가 현장에서 20여 년 동안 청소년을 만나 오면서 배운 것들의 기록이다.
병무청 신체검사 현장, 탈의실에서 청년들이 분주하다. 안내받은 대로 저마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유독 한 사람만 우두커니 구석에 서 있다. 청년 꽃마리(가명)다. 사물함 앞에 선 다음부터는 어떤 움직임도 없어 눈에 띌 수밖에. 재차 안내해 보지만 꽃마리는 아무 말이 없다. 혹시 동행자가 있는지 물었을 때, ‘끄덕’ 처음으로 반응했다.
“꽃마리 님과 같이 오신 선생님이실까요? 들어오셔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입영판정검사를 받는 당사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예외의 상황이 일어났다. 활동가 나비는 꽃마리 곁에 가서 말을 건넸고, 꽃마리는 비로소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꽃마리는 나비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단 몇 줄의 묘사만 보아도 꽃마리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청년이라는 걸 알아챌 것이다. 꽃마리는 우리가 미성년 나이에 만난 은둔·고립 청소년이었다. 등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사람을 마주하기 어려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고, 교실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우리가 처음 꽃마리를 만났을 때, 그의 세상은 방 한 칸이 전부였다. 처음 마주 앉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같이 학교를 가 보자고 약속했지만, 기다리고 결국 만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 날이 허다했다. 애쓴 나날이 무색하게 꽃마리는 자퇴를 선택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통지서를 받고 병무청에 반드시 가야 하지만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나비와 동행했다. 우리 기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곳이지만, 청년이 된 꽃마리의 손은 아직 놓지 못했다.

인적 없는 고요한 집, 화장실에서 물소리만 쉼 없이 들린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도, 그 시간이 훌쩍 지나도 샤워를 마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 청년 괭이밥(가명)이다. 충분히 씻은 것 같아도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계속 씻을 수밖에 없다. 두 시간, 비누 두 개가 다 녹아 없어지도록 씻고 또 씻었다. 이토록 어렵게 샤워를 마친 후에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설 수 있다. 외출해서도 수시로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다.
“약을 먹으면서 씻는 시간이 좀 줄어들었어요.”
정신의학과 진료를 받고 약물 복용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서 스며 올라오는 우울, 무기력, 강박은 괭이밥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씻는 시간이 줄면서 제법 가라앉았던 피부는 다시 붉게 올라온다.
괭이밥 역시 우리가 미성년 나이에 만난 청소년이었다. 등교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친구도 사귀지 않고 늘 기운이 없었다. 청결에 대한 강박 때문에 등교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렸고, 누군가가 친절하게 혹은 호의적으로 대하면 의심하게 되었다. 간혹 어떤 친구가 다가오면 자신에게 잘해줄 이유가 없는데, 뭔가 이용하려고 잘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가 나비는 청소년 괭이밥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한 브랜드의 떡볶이만 4년째 먹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단 한 종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괭이밥은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대입을 희망했지만 기초학습이 되어 있지 않아 그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우리는 청년이 된 괭이밥 역시 아직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꽃마리와 괭이밥처럼 청년이 되어가는 어린이·청소년을 만나는 우리는 ‘교육복지’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지역교육복지센터 소속이다. 빈부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복지’가 등장했다. 누구나 공정하고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관악교육복지센터는 2026년 올해, 관내 40개 유·초·중·고를 지원한다. 종사자 1명이 10개 학교씩 담당하고, 100명 내외의 학생을 다 담당한다. 우리 센터가 작년 1년 동안 만난 어린이·청소년의 수만 해도 900명 이상이다. 만남의 빈도, 깊이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은 수치이다.
어린이, 청소년, 보호자, 교사 등 누구 하나 괜찮다고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제정되었다. 복합적 위기 상황에 놓인 학생에 대해 학교 전체 구성원이 협력하고, 지역기관이 지원하여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통합지원을 실시하라는 제도이다. 교육복지 역시 학생맞춤통합지원 덕분에 그 역할과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제는 경제취약계층을 넘어, 이주배경 학생, 복합위기를 겪는 일반가정 학생, 느린학습자, 특수교육 대상 학생 등 모두에게 맞춤지원을 실시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어린이·청소년의 상황이 어려워진다. 요즘은 하루 2~3건씩 고위기 상황을 마주한다.
지금 어린이·청소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고스란히 겪고 지금에 이른 세대이다. 5~6년 전, 그 시기에 발달되어야 할 부분에 적절하게 자극받지 못하고, 교육 기회를 잃은 채 시간이 흘렀다.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을 모르고, 누군가와 어울려 살지 못했으며, 마스크를 쓴 채 오랜 기간 지내면서 언어 발달도 지연된 이들이 많다. 가구별 소득 격차는 심화되었고, 극빈한 상황에서 살아내는 삶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정도이다.
이러한 시대에 어린이·청소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지금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면 어떤 날들을 예상할 수 있을까. 위기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성장해서 위기의 청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