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람들에게 광장은 어떤 의미일까요.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어요. 그런데 정작 일상에서는, 카페 한 편에서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나라. 2024년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회의 신뢰도는 30개 국가 중 28위, 20.56%에 불과해요. 일상 속 정치가 멀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서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 만난 사람은 그 거리를 좁히려는 서른 살의 청년입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세계를 돌아다니다 결국 한국의 청년들 곁으로 돌아온 사람이죠. 그가 만든 공간에서는 정치 얘기를 해도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환영받아요. 그곳의 이름은 '유난무브먼트'입니다. 유별나도 괜찮고, 특별해도 괜찮고, 세상을 조금쯤 믿어봐도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곳이에요. 백 번 꺾여도 백한 번째는 사랑과 낙관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할게요.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유난무브먼트의 시작을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유난무브먼트의 파운더 양소희입니다. 저는 20대를 지나며 10년 정도 47개국을 다니며 청년 불평등, 여성 청년 정치 대표성 강화, 디지털 민주주의 같은 의제를 가지고 이니셔티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 왔어요. 한국의 맥락을 글로벌로 연결하는 일들이었죠. 그러다 2023년쯤 한국 사회에 발을 붙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유난무브먼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이 기획의 시작은 솔직히 말하면 ‘답답함’이었어요. 당시 제 커리어가 되게 잘 풀리던 시기였는데도 뭔가 계속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매일 보는 뉴스에서 우리 세대가 시스템의 실패로 다치는 걸 너무 반복적으로 목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8년 뒤엔 이태원 참사가 있었죠.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요. 누군가를 탓하고 비판하는 것도 점점 지겨워졌어요. 현장은 그대로인데 욕만 하고 끝나는 일이 무기력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제 블로그 구독자 중 관계성이 높았던 100분께 메일을 보냈어요. 이 문제에 대해 같이 대화해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모여보자고요. 5명만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40명이나 모였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우리 많이 얘기하고 싶었구나”라고요. 시스템의 실패로 사람들이 다치는 감각이 제 개인의 감각이 아니라는 걸 안 거죠. 그리고 이런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어요. 그 두 가지 발견이 유난무브먼트의 출발점이 됐어요.
| 대표님께서는 블로그를 오랜 기간 운영하셨잖아요. 블로그에서 시작해 장학사업까지 만드셨는데, 이 이야기가 궁금해요.
블로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했어요. 벌써 13년이나 했네요. 제가 제주도 출신이다 보니, 비수도권 청(소)년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제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기록하곤 했어요. 경험과 기회의 격차에 관심이 많거나, 한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보셨죠.
사실 결정적 계기는 중학생 때 처음 서울에 갔던 순간이었는데요. 당시 미국 대사관에서 열린 전국 도시별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했거든요. 저는 제주 대표로 아주 기세등등하게 갔었죠(웃음). 근데 엄청난 충격을 받은 거예요. 거기서 만난 수도권 청년들은 제 주변 어른들이 “나중에 대학 가면 할 수 있어”라고 했던 경험들을 이미 다 해본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불평등이란 감각을 느꼈어요. 내가 태어난 곳이 나의 꿈과 기회의 폭을 제한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경험을 블로그에 공유했고 블로그에서 발생한 수익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제주 청소년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꿈 여행 장학사업’을 만들었어요. 서울 일주일 여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서울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스타트업, 비영리섹터, 문화·예술을 보여주는 거였죠. 세상엔 이렇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환대해 줄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3년 동안 14명의 장학생을 배출했고, 이때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이 지금 유난무브먼트의 코어 멤버가 됐어요.
| ‘유난무브먼트’라는 이름이 재밌는데요. 어떻게 지으셨어요?
유난무브먼트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어떻게 규정할까 고민하다가, 사회문제나 변화에 진심인 사람들이 한 번쯤 스스로 검열하거나 밖에서 들어본 말이 있더라고요. “너 너무 유난 아니야?” 이런 말이었어요. 그런데 유난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남들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음’이거든요. 원래는 그냥 특이하고 특별하다는 뜻인데, 한국에서는 되게 부정적으로 쓰이잖아요. 그래서 그 의미를 되찾아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거기에 YOUNAN을 대문자로 놓고 보니까 ‘Young Adult Network’로 읽히기도 했어요. 젊은 어른들의 공동체라는 뜻도 담을 수 있겠다 싶어서, 이 두 가지 의미를 넣어 이름을 지었어요.

‘무브먼트’를 붙인 건 우리가 제안하는 가치가 사회의 표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어요. 커뮤니티를 넘어서 흐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우리 세대가 재미있고 유쾌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사회 운동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했어요. 개인이 소진되기 쉬운 방식의 무브먼트를 넘어, 유쾌한 투쟁 또는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로서의 무브먼트를 제안하고 싶어 이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 유난무브먼트의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회원 가입 때 ‘좋은 어른의 기준’을 묻는 질문도 인상적이었어요.
2023년 설립 이후 1년 반 동안 크게 세 가지를 해왔어요. 첫 번째는 계절별로 멤버들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의 키워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걸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액션들을 공모받고 제안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두 번째는 일상에서 정치·사회적 대화를 재미있는 방식으로 풀어가는 공론장 사업이고요. 세 번째는 사회적 연대와 좋은 시민 레퍼런스를 발굴하고 확산하는 콘텐츠 사업이에요.
회원 가입 시 ‘좋은 어른의 기준’을 묻는 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설계한 거예요. 유난무브먼트의 미션은 좋은 어른이 ‘이런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주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평생 되뇌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거든요. 결국 어떤 삶을 살아갈 건지에 대한 질문과 맞닿아 있으니까요. 유난에 들어올 때 이 질문을 반드시 한 번은 경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허들로 세팅해 뒀어요.

데이터 분석 결과도 흥미로웠어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잡히는 키워드는 ‘책임감’인데, 거의 10명 중 7명 꼴로 압도적이에요. 첫 시즌에 많이 나온 키워드는 ‘타인’이었어요. 타인을 위해, 타인과 함께, 타인을 향한... 이런 형태로요. 그걸 보면서, 인간은 사랑할 때 타인도 자기 세계에 포함시킨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어른이 사실은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구나, 그런 발견을 했어요.
| 2024년 연말 탄핵 이후 전국을 돌며 공론장을 열었다고 들었어요. 공론장을 운영할 때 특별한 원칙은 없으셨나요?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세운 가상의 임시정부 콘셉트였어요. 오신 분들을 ‘나라걱정부’ 장관님으로 임명해 드리고 명함도 만들어드렸어요. 그 공론장이 곧 국무회의가 되는 거죠. 대구에서 열었을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요. 정치 성향이 완전 다른 두 분이 오시면서 시작됐어요. 처음에 한 분께서 “정치 성향이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자리라고 사전에 고지됐나요?”라고 물어보셔서, 살짝 긴장했거든요. 공론장이 마무리될 쯤에는 “저 당(웃음) 사람이랑 대화가 되는 경험이 처음이었다”라고 하시면서 나가셨어요. 이 때도 느낀 점이 있어요. 성향이 다르더라도 정치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지만 자리가 부족하다는 걸요.

공론장을 통해 대화법을 알아가신 분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일상 속에서 또 다른 대화를 열 가능성이 생긴 거잖아요. 그 씨앗을 심어드린 것 같아서 되게 의미 있는 장면이었어요. 대화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은 또 다른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거든요. 그게 저희가 공론장을 계속 여는 이유예요.
공론장을 운영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그라운드 룰도 있어요.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인데요. 내가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동의할 수 없어도 한번 이해해 볼 수는 있다는 걸 계속 강조해요. 동의가 안 되는 것에 혹은 반감이 들 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지”라는 질문을 한 번만 더 던져보자고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이해의 지평이 열리더라고요.
| 물론 정치에 대한 대화의 장이 부족한 건 맞지만, 커뮤니티 비즈니스도 활성화되어있고 또 사회변화를 이야기하는 조직도 있어요. 유난무브먼트의 방식은 무엇이 특별한가요?
지금 커뮤니티 시장은 포화 상태예요. 그런데 자기 계발이나 시장성에 집중한 커뮤니티가 대부분이에요. 퍼스널 브랜딩, 부수입 만들기 같은 것들이요. 좋은 어른, 좋은 시민을 훈련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적 감각을 만드는 커뮤니티는 진짜 부족해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면 ‘정치 얘기 금지’가 불문율이고, 정치 얘기가 가능한 공론장에서는 극단적인 의견이 많이 오가요. 그 사이에서 침묵하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게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의 사회 운동 방식, 예를 들어 서명이나 캠페인도 저는 유용한 개입이긴 하지만, 그건 되게 결심이 필요한 영역인 것 같거든요. 저는 결심 없이도 라이프스타일로서 민주주의를 경험한다는 게 뭘까, 그 고민을 많이 해요. 좋은 시민이라는 게 거창한 민주시민 교육을 듣고 뭔가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좋은 어른으로서 갖는 태도도 사실은 민주주의라는 것과 굉장히 연결돼 있다는 걸 계속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다름에 대한 면역력을 기를 수 있는 커뮤니티, 정치 이야기가 환영받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