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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3
좋은 일을 하다 떠난 사람들 : 사회혁신 일자리의 이탈과 지속가능성
이노소셜랩 정승훈 연구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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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세상엔 많은 모순이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가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실행한 일이 모순을 맞닥뜨릴 때, 우리는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만약 이 좌절을 일터에서 마주한다면 어떨까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든 사람들이지만, 결국 떠나고 마는 현장이 있습니다. 처음엔 누구보다 뜨거웠던 사람이 어느 날 조용히 사라지는 장면,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열정을 들고 들어오는 장면. 사회혁신 현장에서는 이 장면이 반복됩니다.

여기 그 장면을 오래,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사람이 있습니다. 620개 기업, 935명의 참여자와 함께한 시간 끝에 그가 발견한 건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소진시키도록 설계된 구조였습니다. 이번 호는 그 구조를 직접 짚고, 개인과 조직과 제도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방향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사회혁신 종사자, 그들은 지금 괜찮은가?

2025년, 우리 사회는 유난히 많은 이탈과 회복을 경험했다. 각종 재난과 사회적 위기 속에서 현장을 지켜낸 시민들과 연대의 손길들 덕분에 사회는 무너지지 않았고 다시 설 수 있었다. 그 재정렬의 한가운데, 신뢰와 협력을 연결하고 중재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사회혁신 종사자들*이다. 그러나 그 재건에 기여한 사람들은 지금 버티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 바라보는, 사회혁신 종사자는 기존 제도권(공공 또는 민간)이 아닌 영역에서, 당사자성 기반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문제에 대응하며 직업인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 사회혁신 종사자를 분류하는 기준은 크게 없지만 대개 이렇게 분류하고 있다. | ⓒ정승훈 ]

사회혁신 일경험은 대개 선의로 시작된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리어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진된다. 이탈은 고용유지율 저하라는 통계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숫자는 어느 순간 "이 일자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관련 분야 예산 삭감의 근거가 되어 돌아온다.¹

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버티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우리 사회는 통상적으로 답해왔다. 조직이 고용 창출 여건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거나, 개인의 의지와 역량 부족으로 이탈의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종사자 개개인을 들여다보지 않은 섣부른 진단이다.

[ 반복되는 사회혁신 종사자의 이탈과 통상적 해결의 맹점 | ⓒ정승훈 ]

무균실이 필요한 사람들, 그리고 반복되는 패턴

사회혁신기업에 일자리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무균실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620개 기업, 935명의 참여자와 함께한 시간 동안 현장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들어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처음엔 누구보다 열심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회혁신 일자리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지는 사람들, 이탈 후의 연락에서 "무음, 무색, 무취의 공간에서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어지고 싶었다"라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들...

사회혁신 종사자들의 이탈에는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었지만, 반복되는 패턴이 있었다.은영(가명)은 환경 분야 혁신기업에서 일했다. 보상보다 의미, 지위보다 기여. 그녀의 헌신은 주변의 감탄을 샀고, 조직은 그 헌신에 기댔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점검하고 함께 독려해 주는 시스템은 없었고, 주어진 사업을 운영하는데 급급했다. "내가 이 일을 사랑했기 때문에 더 많이 상처받고 있는 것 같아요." 선의가 자원이 되고, 그 자원이 소진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준(가명)은 이해관계자 사이를 조율하는 기획자였다. 갈등을 감지하고 완화하는 데 탁월했지만, 그 역할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버퍼 역할을 하다 보니 지쳐요. 갈등을 내가 다 흡수하는 느낌이에요." 사업이 끝난 뒤 그는 조용히 팀을 떠났다.

수빈(가명)은 불안정 노동과 경력 단절을 겪은 뒤 사회혁신 조직의 문을 두드렸다.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명확한 체계도, 실수를 허용하는 문화도, 여러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한 통로도 없었어요." 어느 날 그녀는 사직서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졌다.

세 사람의 사연은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이탈. 그리고 그 이탈에는 각각 다른 이름이 있었다. 은영의 것은 도덕적 상처, 민준의 것은 감정 노동의 소진, 수빈의 것은 안전 불안. 심리학자 데이비스와 로퀴스트의 직업적응이론은 사람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환경에서 충족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 사람 중 누구도 자신의 핵심 가치를 제대로 돌봄 받지 못했고, 그건 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치와 현실 사이, 네 가지 모순

위와 같은 사연을 접할 때마다 고개를 젓고 싶었다. 부족한 건 당신이 아니라고, 이 구조가 당신을 충분히 받쳐주지 못한 것이라고 말이다. 사회혁신 일자리의 이탈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구조의 실패다. 그리고 그 구조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해 온 사람으로서, 이 이탈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사회혁신 현장에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네 가지 모순이 있다.

첫 번째는 사회적 관성과 가치 추구 사이의 모순이다. 경제적 성장이 주류인 세계에서, 사회혁신 종사자는 수익을 넘어 가치를 좇아야 하는 사람이다. "친구들은 연봉 협상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임팩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고용이 비정기적인 정부 예산에 기대어 있을수록 이 불안은 더 깊어졌다. 가치와 생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 이것이 사회혁신 종사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모순이었다.

두 번째는 현장의 통합 역량이 시장에서 무전문성으로 치부되는 모순이다. 사회문제는 교육, 빈곤, 기후, 돌봄이 실처럼 얽힌 복잡한 문제다. 이걸 다루려면 경계를 넘나드는 통합적 시각이 필수적이다. 또한 규모가 작은 사회혁신기업 특성상 한 사람이 다양한 직무와 역할을 맡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사업 참여자들이 참여 성과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마다 겪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가 뭘 했다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든 다 했는데, 딱 잘라 설명이 안 돼요." 현장에서는 만능이지만, 시장에서는 전문성 없는 사람이 되는 딜레마다.

세 번째는 조직이 표방하는 가치와 내부 현실의 불일치다. 돌봄을 외치는 조직이 정작 구성원을 소진시키고, 연대를 강조하는 조직이 내부 동료를 고립시키는 역설이다. 사업 운영 중 참여 기업 담당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외부에서 보면 우리 조직은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기업이지만요. 정작 일하는 방식은 폐쇄적이에요. 정보가 적절히 공유되지도 않고, 협력이 작동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걸 내부에서 말할 수 있는 통로조차 없어요." 믿었던 가치가 내부에서 배신당하는 이 경험이 쌓일 때, 도덕적 상처가 된다.

네 번째는 임팩트 워싱과 진정성의 위기다. 사업을 운영하다 보면 발주기관의 이해관계나 KPI를 채우기 위해 본질에서 멀어지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정량적 성과, 사업 참여 만족도, 참여 전후 유익성, 네트워크 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 애초에는 변화의 단초를 확인하기 위해 설정한 지표임에도 결국 보여지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현장의 복잡한 맥락이 단순화되고, 성과적 관점에서의 그럴듯한 포장지가 입혀진다. 종사자들은 "내가 정말 변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라는 물음을 삼키며 보고서를 쓴다. 진정성을 유지하려는 사람일수록 이 괴리에서 오는 소진이 더 컸다.

반복되는 이탈이 만드는 구조적 손실

이렇듯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의로 진입한 이후, 유지와 성장을 이어가지 못하고 이탈하는 사례는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 이탈이 개인의 경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한 명의 이탈은 단순한 인력 공백이 아니다. 채용과 온보딩에 투입된 시간과 비용이 사라지고, 업무의 연속성이 끊기며, 축적되던 경험과 노하우가 함께 사라진다. 특히 사회혁신 조직처럼 사람의 역할 비중이 큰 환경에서는 이 손실이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생태계 차원의 손실이다. 한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인력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가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쌓아온 협력의 맥락이 단절되고, “이 영역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인식이 누적되면서 새로운 참여자들의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결국 이탈이 반복될수록 사회적 자본은 축적되지 못하고,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비용은 점점 더 커진다. 사람을 다시 설득해야 하고,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처럼 사회혁신 일자리의 구조적 모순은 개인의 소진을 넘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생태계 전체의 신뢰 비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구조적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회혁신 일자리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²  문제는 점점 더 장기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지만, 이를 다루는 제도와 자원 배분 방식은 여전히 단기적 성과 중심의 틀에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즉, 문제는 길어졌지만, 해결을 요구받는 시간은 오히려 더 짧아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바로 ‘구조적 전가’다. 사회가 감당해야 할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제도 설계 속에서 충분히 흡수되지 못한 채, 개별 조직과 종사자에게 이전된 것이다. 조직은 제한된 시간 안에 성과를 증명해야 하고, 종사자는 그 불확실성과 긴장을 개인의 몫으로 감당해야 한다. 결국 사회문제의 무게는 제도가 아닌, 사람 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 정책이나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사회혁신 생태계 전반을 지배하는 작동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한시적으로 배분되는 재원, 단기적인 예산 사업 구조, 단순한 수치 중심의 성과 평가 지표는 모두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시스템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사회문제는 본질적으로 빠르게 해결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한 탐색과 실험, 실패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결국 사회혁신 일자리의 모순은 ‘의지의 부족’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짧게 설계된 시간 구조와 이를 뒷받침하는 평가 체계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면서도, 그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은 제공하지 않는 모순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좋은 일을 하다 떠난 사람들 : 사회혁신 일자리의 이탈고과 지속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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