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에서 김두식(조인성)은 초능력을 숨기며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이 ‘다르다’는 낙인이었죠. 하지만 드라마 후반, 모든 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상을 견디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날 수 있는 사람, 재생할 수 있는 사람, 전기를 다루는 사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누가 긋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보조기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다름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그 경계를 질문합니다. 기술은 변화하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를까요? 매일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가 심박수를 체크하고, 넘어짐을 감지하는 것처럼, 기술은 이미 '돕는 것'과 '편리한 것'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스마트워치와 보청기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더 나은 사회는 '특정 누군가'가 아닌 '모두'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시스템에서 시작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혹시 '보조기기'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대부분은 휠체어나 보청기, 혹은 병원에서 쓰는 목발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왠지 '나와는 거리가 먼',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최근 몇 년간, 세상은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기술들은 이미 '보조기기'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를 보면 이 트렌드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 부스를 따로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아닙니다. CES를 가득 채우는 AI 로봇, 스마트 홈 시스템, 첨단 웨어러블 기기 등 모든 부스에서 노인과 장애인의 삶을 돕는 기술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노인을 위한 낙상 방지 센서는 이제 일반 가정용 스마트 홈 시스템의 기본 기능이 됩니다. 발달장애 아동의 감정 상태를 파악해 돕는 AI 스피커는 곧 누구나 쓰는 개인 맞춤형 비서 로봇으로 발전합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로봇은 곧 독거노인을 위한 말동무이자 생활 지원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술은 이미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인과 청년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보조기기는 더 이상 '특정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기술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책은 이러한 놀라운 기술과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고 있을까요?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의 보조기기 지원 시스템은 여전히 수십 년 전의 '낡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낡은 옷을 벗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새로운 정책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기술은 이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었지만, 정책은 여전히 '장애 등급'이라는 벽에 갇혀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조기기 지원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공급자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정부가 정한 까다로운 '기준'에 따라 '이거 받아'하고 정해서 주는 방식입니다. 지원 대상은 주로 장애 유형, 장애 등급, 소득 수준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기준 중심'의 낡은 방식 때문에, 정작 보조기기가 필요한 많은 사람이 혜택에서 소외되는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잠깐,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① 구시대적인 '기준'의 덫
보조기기 지원은 여전히 '장애 등급'같은 낡은 기준에 갇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동휠체어 지원은 '심한 장애' 판정을 받아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시적인 사고나 질병으로 재활이 필요한 일반 시민이나, 초기 단계의 장애가 있는 사람은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합니다. '필요'가 아니라 '등급'이 지원의 열쇠가 되면서, 꼭 필요한 사람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② '욕구'가 아닌 '제도'에 맞춘 지원
정책이 "누구인가(장애 등급, 장애 유형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무엇이 필요한가(욕구가 무엇인가)"하는 개인의 절실함은 무시됩니다. "나는 기억을 깜박해서 약 복용 시간을 놓치는데, 복약 확인을 도와주는 기기가 필요해"라는 구체적인 욕구가 있더라도, 정부가 정한 목록이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장애인복지법, 건강보험법 등 목적이 다른 다양한 법과 제도의 칸막이 때문에, 지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복잡한 절차와 기준에 갇혀 버립니다.

③ 대다수 노인을 외면하는 '복지 사각지대'
보조기기가 절실한 또 다른 계층은 노인입니다. 하지만 현재 보조기기 정부 지원은 장애 등록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의 장애인 등록을 하지 못한 노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노인을 위한 유일한 지원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요양 등급자에게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양 등급 인정률은 전체 노인의 10% 남짓에 불과합니다. 결국 90% 가까운 노인들이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는 보조기기 지원에서 배제되는 심각한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낡은 방식은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들을 '칸막이' 속에 가둬버립니다. 장애인복지법,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다양한 법과 제도 아래에서 지원이 목적성에 따라 쪼개져 있다 보니, 정작 지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경로를 통과해야 내가 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가 됩니다.
우리는 이제 기술의 장벽이 허물어졌듯이 이 낡은 칸막이를 허물어야 합니다. 보조기기 지원의 기준이 '정량적인 기준'이 아니라, '개인이 느끼는 불편함과 욕구'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다양한 욕구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게 됩니다. 더불어 이러한 다양한 욕구에 따른 보조기기 수요는 결국 보조기기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열쇠가 되게 됩니다.


AI, 로봇 기술과 결합하여 보조기기 기술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장으로 나와서 보조기기를 만드는 산업이 크게 성장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공급자 중심/기준 제한'지원 방식은 사실상 '보조기기를 살 수 있는 사람'을 정부가 정한 기준 안에 묶어두어 시장의 범위와 규모를 작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구매층이 한정되니 기업들은 연구 개발(R&D) 투자를 망설이게 되고, 결국 제품의 가격은 비싸지고 종류는 적어지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장애인만을 위한 시장'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장을 확대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잠재 수요자가 부담 없이 기기를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가장 혁신적인 방법은 바로 '대여 서비스'를 통한 경험 확대입니다. 현재 지역에서 소규모로 제공되는 대여 서비스를 대규모로 확대하여 '보조기기 체험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물류의 집중을 통한 효율적 대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여 서비스' 확대의 효과
대여 기간이 끝난 후, 장기적으로 사용을 원하는 경우에는 '렌탈 제도(구독사업)'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수 있도록 정책을 연계해야 합니다. 즉, '대여'는 체험과 실증, '렌탈'은 장기적인 이용을 위한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여 → 렌탈'연계 시스템은 산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줍니다. 기업들은 새로운 수요를 확보하고, 대여 기간 동안 사용자 피드백을 받아 기술을 점검하고 제품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 기술력을 높이는 '실증의 장'이 되며, 결국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은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까지 이어져 복지 증진과 산업 성장을 함께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