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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6.03.12
30년을 쌓아온,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
이주민 연대 활동 이란주 작가
오늘의 키워드
#다문화/이주민
#청소년/청년
오늘의 질문
새로운 곳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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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겁니다. 2024년 말 기준,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낯선 땅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30년을 함께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때때로 누군가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죠. 언어가 다르거나, 제도가 막아서거나, 혹은 우리가 듣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일, 물 위를 떠다니던 개구리밥 같은 삶들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 그 일을 해온 한 사람의 30년을 들여다봅니다. 우연히 시작되었지만 멈추지 않은 여정, 아직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우연히 다가온 일과 30년의 여정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이주민 인권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주와 관련해서 일하고 있고,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이란주입니다. 1994년 한 주간지에서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발견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이주노동자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그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됐어요. 느끼는 점도 많아서 무작정 그 기사에 나온 단체를 찾아갔어요. 제가 이주민을 위해 거창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아, 내가 할 일이 여기에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단체에 가서 청소하고 밥도 하면서 단체 사람들과 친해졌어요.

그리고 1995년에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이 생겼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당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을 하면서 사회가 크게 흔들렸죠. 연수생들이 들었던 피켓이 “때리지 마세요, 월급 주세요, 여권 돌려주세요”였어요. 그때 연수생들 임금이 월 200달러, 당시 환율로 16만 원 정도였어요. 국내 최저임금은 27만 원이었는데요. 이 농성을 통해서 연수생들한테도 최저임금이 적용되고, 건강보험도 적용됐어요. 이주민의 권리는 정말 악을 쓰면서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처음부터 당연하게 인정된 건 하나도 없었어요. 하나씩 하나씩 싸워가면서 권리를 확보해 왔어요.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농성(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 사진) | ⓒ플랫폼씨

| 이주민과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내셨네요. 활동가로 일하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1995년부터 10년가량은 임금과 산재를 중심으로 한 노동 상담에 집중했어요. 그때는 이주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노동자 관련 상담이 많았죠. 일상이 가시방석이었어요. 사무실에 들어가면 받아내야 할 임금이 잔뜩 적혀 있는 파일이 쌓여 있었어요. 또 잘 해결도 안 되는 문제가 많아서, 늘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밤에 전화가 울리면 누가 다쳤거나 아프거나 혹은 죽었다는 긴급한 일이 많았죠. 저도 가끔은 “출근하기 무섭다”라고 했을 정도로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이주민 상담을 하다 보면, 아기가 태어날 때도, 누군가 삶의 고난을 견딜 때나 행복한 순간에도, 누군가 죽어갈 때도 함께 하게 되죠. 이주민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켜보게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 이주민의 삶을 지원하는 행정체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이 민간지원단체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다 보니 이주민을 둘러싼 다수자인 한국인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어야 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주민과 공존을 주제로 한 교육 활동을 시작했죠. 우리 단체 사무실이 있던 부천 도당동에 이주민이 많이 살았는데, 거기서 이주민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같이 음식을 해 먹고, 동네 축제를 하고, 수요일마다 공원에서 저녁밥을 같이 먹는 가든파티도 했어요.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행사를 열잖아요? 그럼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도 섞이더라고요. 아이들이 나오면 엄마들도 따라 나오고, 동네 어르신들도 나와서 한 마디씩 참견도 해주고요. 저는 이주민만의 삶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역 사회에서 주민들이 어떻게 함께 융화를 만들어 내느냐가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봐요.

이주민과 지역주민의 교류 및 협력을 위한 프로그램 | ⓒ이란주


| 30년 넘게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 등 이주민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한국에 와서 살아내는 그 생명력과 그 힘을, 대단하다는 말 밖에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옆에서 그걸 보고 듣고 배우고 그 에너지를 전달받아 오히려 힘을 많이 얻었어요.

처음엔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단신으로 왔지만, 여기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기도 해서, 그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곁에서 볼 수 있었어요. 제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은 희망적이에요. 상당한 부침을 겪었지만 잘 견뎌내고 다들 열심히 잘 살고 있어요. 물론 한국 사회의 잣대로 봤을 때는 그 기준에 딱 맞지 않을 수 있지만요.  아이들은 저마다 힘이 있어요. 그 아이들의 생명력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고요. 우리 사회가 차별이나 편견, 배제라는 무거운 힘으로 아이들을 짓밟지 않기를 바라요. 아이들을 잘 키워내면 우리 사회는 분명 더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가 될 거예요.

쌓여 있는 목소리를 대신 전합니다.

| 그렇게 활동가로 열정적으로 사셨는데요. 작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시작은 별 게 아니었어요. 비영리단체의 운영은 후원금이 필요하잖아요. 후원금을 유치하려면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잘 알려야 했어요. 래서 상담 사례를 소식지에 쓰기 시작한 거죠. “우리 상담소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알리는 보고서였어요. 소식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면서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잡지에서 정기적으로 써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주셨어요. 그렇게 잡지에 정기적으로 싣게 된 글들이 쌓였고, 쌓인 글을 엮어 『말해요 찬드라』라는 첫 책이 나왔어요. 두 번째 책 『아빠 제발 잡히지 마』도 같은 과정을 거쳐서 나온 거고요.

그런데 사례집은 사례가 하나하나 끊어져서 삶이 온전히 드러나기가 힘들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오롯이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르포르타주 소설 『로지나 노, 지나』를 쓰게 됐죠. 실제 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 가정의 이야기를 엮어서 로지나 이야기로 정리했어요. 이주민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전하고 싶었거든요.

다양한 이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이란주 작가의 저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글쓰기의 중요함을 깨닫게 됐어요. 우리 사회가 이주민에게 얼마나 가학적인 사회인지를 성찰할 기회가 필요했고, 글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지금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제게는 크게 경계가 있는 일은 아니에요. 글쓰기는 제가 하는 일의 연장선에 있고, 여러 일 중 하나죠.

|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이잖아요. 윤리적인 고민도 많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어?”하는 자각이 오더라고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는데, 그 아이가 책을 읽을 나이가 됐을 때였어요. 그때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글쓰기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지, 내 글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게 됐어요.

가장 크게 고민하는 건, 이주민 당사자의 자긍심을 어떻게 드러낼 것 인가예요. 차별받는 이들의 단점이나 문제점을 비당사자가 고민 없이 언급하는 것은 오만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당사자는 그것을 드러내고 희화화할 수도 있죠.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의 드라마 <성난 사람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수치스럽고 궁색한 모습의 한국인 이민자가 주인공인데, 만약 같은 영화를 백인 감독이 만들었다면 인종차별이라 비판받았을지도 몰라요. 한국인 입장에서 시청하기 매우 불편했을 테고요.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하는 이야기이니 웃으며 볼 수 있죠. 당사자가 아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현실을 그리되 이주민의 자긍심을 담는 것입니다. 그다음 이야기는 당사자가 직접 하는 날이 오겠죠.

|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도 많이 쓰셨어요. 청소년을 위한 책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어른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너무나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사고가 유연하고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청소년, 아동에게 초점을 맞춘 글도 쓰고 있어요. 무엇보다 미래에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삶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일 때,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또 이주민 관련 현장을 경험하고 책을 쓴 사람으로도 책임감을 좀 느끼는 편이에요. 이주민은 한국어로 글을 쓰기 어렵죠. 하고 싶은 이야기가 화산처럼 폭발해도 한국어로 말하기 힘들죠. 그걸 제가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인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고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지금 2세, 3세들의 이야기가 글로 나오고 있어요. 이주민의 자녀들이 자라서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도 이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30년을 쌓아온, 아직 전하지 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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