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진실은 아닙니다. 안전한 집을 유지하려면 때로는 수리가 필요하죠. 하지만 그 수리 과정 자체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역설이 존재하곤 합니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집수리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메인 전등이 나가도 몇 년을 미루고, 암전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수리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집에 낯선 사람이 온다는 것 자체가 감수하기 어려운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라이커스 안형선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습니다. 투명한 견적, 사담 없는 서비스, 세심한 사전 상담. 그동안 집수리 업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가는 라이커스의 중심에는 "생존 그 자체가 메시지"라고 말하는 안형선 대표가 있습니다. 여성 기술자를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곧 변화를 만드는 일임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생존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안형선 대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회사명도 특별한데요. 왜 '주식회사 왕왕'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여성 주택수리 서비스 라이커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왕왕 대표 안형선입니다. 왕왕이라는 이름은 처음엔 의미 없이 지었어요. 창업할 때 입에 부르기 쉽고 기억에 남는 단순한 이름을 원했거든요. 나중에 의미를 붙였는데, 고객과 기업, 근로자가 모두 왕대 왕의 관계처럼 동등한 관계였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라이커스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물류센터를 운영했어요.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물류 회사에서 일하다가 창업 교육을 받으면서 시작했죠. 그때도 물류 업계가 여성들이 잘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서, 여성들이 만드는 물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이미 여성이 소외된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 여성 대상 범죄에서 창업의 계기를 발견하셨다고요. 보통은 문제의식에서 머물기 마련인데,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하게 되었나요?
제게 여성과 안전의 문제는 관념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19살 때 어두운 골목에서 성범죄자와 1대 1로 맞닥뜨렸고, 혼자 살면서 안전에 대한 위협을 늘 실질적으로 느꼈거든요.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언제나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하지만 창업으로 연결하게 된 결정적인 경험은 친구와 살 때였어요. 당시에 화장실 수리가 필요해서 집주인에게 요청해 둔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저희 집 문을 열려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집주인 사전 연락 없이 와서 그냥 비밀번호를 누르는 거였어요. 세면대를 고치러 왔다는데, 40대 후반 남성이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죠. 여자들만 사는 집인 걸 뻔히 알면서도요. 다행히 별일 없이 넘어갔지만, 사실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집수리가 모르는 사람이 와도, 아는 사람이 와도 불편한 영역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불편함을 해결할 서비스를 아무도 안 만드는 거예요. 마침 창업 경험이 있었으니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했고, 거기서 아이디어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 아이디어가 비즈니스가 되어 수익을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심사위원들의 공감을 얻긴 했어요. 하지만 그게 사회 전반적인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다음 단계로 체험단을 생각했어요. 이 서비스를 이용할 고객이 진짜 있는지, 기존 서비스에서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정말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이때가 중요한 시점이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집수리 관련 교육은 이수했지만, 솔직히 현장 경험이 전혀 없었어요. 교육 과정에 실습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실제 현장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래서 체험단을 모집해서 실전 경험도 쌓고 동시에 시장의 반응도 확인해 보자고 한 거예요. 결과적으로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해 주셨어요. 이틀 만에 100명이 신청하셨으니까요. 그때 확신을 느꼈어요. 우리가 던지려고 했던 메시지를 사람들이 되게 잘 이해하고 필요로 했다는 걸요.
체험단은 프로토타입이었기 때문에 수리 공임을 안 받았어요. 그냥 부품 가격만 실비로 받았죠. 왜냐하면 분명히 기존 서비스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릴 거고, 경험이 없어서 서툰 부분들이 있을 거기 때문에 고객들과 서로 트레이드오프를 한 셈이죠. 두 달에 걸쳐 약 70팀을 서비스했는데, 저희는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고객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현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힌 거죠. 이 경험이 라이커스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몇 년 동안까지도 큰 힘이 됐어요.

| 집수리 기술을 배울 때 어려웠던 순간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집수리의 영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자체가 혼란스러웠어요. 인테리어까지는 아니고 세면대나 수전 같은 소규모 수선을 생각했는데, 이게 팀 단위가 아니라 1인 단위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어디서 배워야 하지? 철물점 아저씨한테 배워야 하나? 막 이러다가 여성 기술 업계 네임드 분들, 용접공도 찾아가서 물어보고 그랬어요. 수소문 끝에 기술 교육기관을 찾아서 교육을 받았어요. 실습이 있긴 했지만 절대 현장 상황과 똑같지는 않잖아요. 실제 경험이라는 걸 쌓아야 되는데 알려줄 사람이 없었어요. 여성 선배는 더더욱 없었죠. 집수리라는 영역이 원룸 건물주가 배워서 관리해도 되는 영역이었으니까요.
가장 힘들었던 건 환경적인 성차별이었어요. “여자인데도 잘하네”라는 말은 기본이었어요. 진짜 불편했던 건 서툰 남학생에게 “왜 옆에 있는 여자보다 못하냐”라고 묻는 거였죠. 그리고 새로운 걸 물어봐도 “그건 네가 못할 텐데”라는 반응도 편치 않았고요. 막상 배우면 어렵지 않은 기술인데도, 성장하거나 새로운 데이터를 얻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혼자서도 많이 부딪히고 체득했죠. 그게 가장 힘들었지만 자산이 됐어요.

|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시면서 느낀 집수리의 본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곧 집수리의 본질이에요. 사람마다 집에 대한 감각이 다르거든요. 들어가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집의 분위기가 가지각색인 게 정말 재미있어요. 30평 넘는 아파트에 TV도 없고 덩그러니 소파만 있는 집도 기억이 나고요. 또 너무 깨끗한 집인데도 “집이 너무 지저분하죠”라고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게 모두 다르다는 걸 느꼈죠. 그분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거예요. 집수리는 단순히 고장 난 걸 고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 라이커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차별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격의 투명성이 우리 서비스의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변기 교체 시공비 9만 9천 원, 샤워기 호스 교체 1만 1천 원, 출장비는 서울·인천·경기 2만 2천 원. 이렇게 명확하게 정해져 있어요. 예전에는 철물점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업체에서 집수리 서비스를 이용했어요.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정보가 많이 오픈되지 않았죠. 서비스도 좀 투박했고요. 요즘은 유튜브로 다 찾아보고 직접 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소비자들도 이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가격과 정보를 제시하려고 하죠. 불투명한 견적으로 비싸게 부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명확한 가격을 알려드리는 거죠.
| 기존 집수리 업계의 ‘투박한 서비스’는 무엇이고 왜 지속되어 왔다고 보시나요?
투박한 서비스는 재구매율이 낮은 영역 탓에 발생하는 것 같아요. 집수리는 기본적으로 1년에 몇 번 이용할 일이 없잖아요. 한번 고치면 기본이 N년이죠. 그러다 보니 비싸게 불러서 한 번에 벌고 보자는 마음으로 하는 분이 많아요. 사실 경험이 없는 기술자가 와서 발생하는 문제도 있고요. 기술 영역에서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커져요. 상황이나 서비스 이용자의 성향을 반영하지 않는 거죠. 고객 응대나 접객 면에서 서비스가 떨어지고요.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매칭 플랫폼이 껴있다고 해도 해결이 되는 건 아녜요. 수리 기술자는 우리집의 주소나 혼자 사는 것 등 이용자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할 수 있지만, 이용자는 수리 기술자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저희는 최대한 현장 추가요금이 없도록 상담을 진행해요. 미리 사진을 받아보고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해서 방문하죠. 상담이 소비자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100%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요. 카카오톡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 또 다른 차별점인 '사담을 나누지 않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제 개인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동생 집에서 강아지를 봐주고 있는데 정수기 점검을 오신 코디분이 불편한 말을 하더라고요. 직업이나 결혼 여부 이런 것들이요. 정수기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제 신상에 대한 얘기를 펼쳐 놓으셨을 때, “왜 요청한 서비스가 아닌 얘기를 하실까?” 싶었어요. 그래서 사담을 나누지 않는 서비스를 기획했어요.
고객 피드백을 보면 “와서 말 걸거나 하는 거 부담스러운데, 사담 없이 해서 좋았다”, “배려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 게 너무 좋았다”라는 내용이 많아요. 필요한 일만 하고, 고객의 공간을 최대한 존중하는 거죠. 이용 후기를 보면, 집에 불특정한 타인이 오는 게 너무 싫어서 몇 년 동안 집수리를 미루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메인 전등이 나가면 욕실 전등의 빛으로 살다가, 그것마저 나가고 정말 암전이 됐을 때 수리를 시청하시는 거예요. “몇 년 만에 고치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보면, 집과 관련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었겠거니 짐작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