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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올해도 달릴 당신, 함께 뛰는 건 어떠세요?
시각장애인 동반주자 김영아 가이드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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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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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어떤 목표를 세우셨나요? 혹시 그 목표 중 '달리기'가 있으신가요? 매주 토요일 아침, 남산 북측순환로에는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끈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8년간 시각장애인 가이드러너로 활동해 온 김영아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평범한 은행원인 그녀는 새벽 첫 차를 타고 출근해 운동하고, 점심시간에도 달리고, 주말에는 시각장애인 러너들과 함께 뜁니다.

김영아 러너에게 달리기는 '출발선이 같은 정직한 세상'을 발견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오직 내 몸으로만 겨룰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에서 그녀는 마라톤 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자신의 다리를 '100만 불짜리 다리'라고 부르며 좋은 곳에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가이드러너 활동은 18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올해는 꼭 달려야지' 다짐하셨다면, 혼자가 아닌 함께 달리는 건 어떨까요?


출발선이 같은 정직한 세상의 발견


|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함께 어떻게 러닝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하나은행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은행원인 김영아입니다. 현재 20년 넘게 일하고 있고요. 마라톤은 2003년에 시작했는데, 사실 처음엔 먹을 걸 먹으려고 시작했어요. 당시 외환은행 계약직으로 월급이 80만 원 정도였고,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때 금융노조 마라톤 대회가 있었는데 대회비가 공짜고 밥을 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 아버지의 270mm 운동화를 빌려 신고(제 발은 245mm예요) 발목을 묶고 뛰었는데, 1등을 한 거예요.

그게 제게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달리기는 출발선이 같고, 내 몸으로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누구 백도 필요 없고, 정직하게 겨룰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게 소름 끼쳤어요. 고등학교 때도 엄마가 혼자 딸 넷을 키우셨는데, 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항상 1등을 해야 했거든요. 친구들이 떡볶이 먹으러 가고, 학원 다닐 때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달리기는 너나 나나 다 똑같은 거예요.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매주 시각장애인 동반주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하고 있는 김영아 가이드러너 | ⓒ김영아

| 그렇게 달리기를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시각장애인 가이드러너까지 하게 되신 건가요?

 

계속 달리다 보니 기록이 좋아지더라고요. 2004년에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13초를 뛰었어요. 2등이었는데, 13초가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런데 그 13초를 줄이는 데 3년이 걸렸어요. 그 시간 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잘 달리는 이유가 그냥 주신 게 아니구나. 정말 100만 불짜리 다리가 되라고 시간을 주신 거구나"라고요. 그래서 달리면서 계속 결심했어요. 이 다리를 정말 좋은 곳에서 잘 써보겠다고요.

2006년쯤부터 시각장애인 러너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서브3(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준비하는 시각·청각장애인 남성분이 계셨는데, 가이드할 사람이 없다는 수소문이 저에게 왔어요. 그렇게 이철성 선생님을 만났고, 17년 넘게 함께 달렸어요. 그리고 2007년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약속대로 우승했죠. 2시간 53분 20초로요.

| 시각장애인 분들과 함께 뛰게 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원래 시각장애인들이 모여서 뛰는 마라톤 클럽이 있었어요. 지금으로 보면 러닝 크루 같은 거죠. 하지만 동반주자들이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2018년 즈음 그 당시 시각장애인 분과 나와서 남산, 목동, 잠실 운동장에 포스터를 붙였어요. "시각장애인 동반주자가 없습니다. 연락 주세요"라고요.

그 당시엔 가이드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남산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오지랖을 발휘해서 붙잡았어요. "도와주세요. 시각장애인 가이드 방법은 제가 옆에서 가르쳐 드릴게요"라고 많이 말씀드렸지만, 거절도 많이 당했죠. 그래도 조금씩 참여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동반주자 단톡방에 800여 명이 있어요. 전국에서 뛰고 계시죠. 제주도에서도 사진 올라와요. "오늘 이분하고 뛰었어요"라고요.

끈으로 연결되어 친구가 되기까지

| 시각장애인 러너와 가이드러너 사이에는 ‘끈’이 있죠. 끈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믿음의 끈'이라고 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느껴요. 이 끈은 상대를 알아가는 거예요. 달리면서 끈을 서툴게 잡는 분, 능숙하게 잡는 분, 다 성향이 나와요. 급한 성격인지, 느긋한 성격인지, 잘 믿지 못하는지, 다 느껴져요. 호흡이 잘 맞으면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도 서로 어깨가 스치면서 달릴 수 있어요. 우리는 모르는 사람끼리 어깨가 스치면 짜증 나잖아요. 근데 시각장애 선생님과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달릴 수 있어요. 끈을 이렇게 손에 잡고 달리다가 위험하면 한 바퀴 돌려서 거리를 짧게 할 수도 있어요. 안전해지면 다시 풀고요.

시각장애인 러너와 가이드러너를 연결해 주는 ‘트러스트 벨트’ | ⓒ김영아, England Athletics

그리고 항상 시각장애 선생님들한테 방향과 숫자를 알려드려요. "왼쪽 11시 방향이에요", "계단이 17개 있어요" 이런 식으로요. 우리가 눈으로 봤을 때는 큰 직선도로 같지만, 막상 달려 보면 자로 잰 듯한 직선도 없고, 완벽한 평지도 없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는 모든 방향과 주로(走路)를 이해하기 쉽고 구체적으로, 숫자로 설명해드리려고 해요.

| 가이드러너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실력은 기본이에요. 시각장애 선생님이 60분 뛰면 비장애인은 적어도 55분 미만으로 뛸 수 있어야 해요. 저도 힘들면 옆을 못 보거든요. 달리면서 돌발 상황이 정말 많아요. 그 돌발 상황 속에서도 이분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려면, 저는 숨이 차지 않게 설렁설렁 뛰는 기분이어야 해요.

그런데 실력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 능력이에요. 잘 살피고, 관찰하고, 상대 입장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숨소리가 가쁜지, 오르막에서 약한지 내리막에서 약한지, 다 파악해야 하거든요. 요즘엔 MBTI가 있어서 참 좋긴 해요. 시각장애인 러너가 T 성향일 때, 가급적 F 성향의 동반주자를 매칭해드리려고 해요. 그래야 대화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친구를 만들어 드리는 거죠. 친구가 되면 한 두 번 뛰다가 백번을 함께 뛰게 되니까요.

| 가이드러너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도 있으셨나요?

이철성 선생님과의 마지막이 제일 힘들었어요. 선생님은 시각·청각장애에 대장암까지 이겨내셨는데, 파킨슨까지 왔어요. 근육을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기역(ㄱ)자로 엎드린 자세로 뛰셨어요. 서브3를 하셨던 분인데 너무 야속했죠. 선생님이 2025년 결국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그분의 유일한 모임이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의 모임이었어요. 감히 짐작해 보면 얼마나 간절하셨을까 싶어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죠. 시각장애인 ‘단체’를 만나기보다는 시각장애인 러너 한 분 한 분을 만나 정말 필요한 일을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요.

김영아 가이드러너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이철성 러너 | ⓒ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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