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인간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알랭 드 보통이 에세이 《행복의 건축》에서 한 말이에요.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곳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2025년 대한민국에서 그 '보루'를 마련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1인 가구 천만 시대, 서울 평균 원룸 보증금은 1천만 원에 월세 80만 원. 여기에 관리비와 공과금까지 더하면 매달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죠.
그래서 생체의공학을 전공하던 청년은 일곱 번의 창업 시도 끝에 '집'을 선택했습니다. 역세권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노후 건물 3층, 4층. 그곳에 '픽셀'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칸들을 하나씩 채워 넣기 시작했고, 지금은 60개가 넘는 공간이 됐어요. 그가 말하는 '픽셀 하나하나가 모여 도시를 바꾼다'는 이야기, 들어볼까요?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노후화된 건물이나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코리빙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로카101의 박준길입니다. 원래는 생체의공학을 전공했는데요. 의공학이 전자공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다만 의료기기로 특화한 거죠. 친구들은 제조기업으로 많이 취업했지만, 저는 창업을 해보고 싶어 창업 동아리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동아리로 시작하다 보니 처음엔 정말 ‘애들 장난’ 수준이었어요. 쏘카처럼 차량 공유 플랫폼도 생각했고, 팔찌형 교통카드,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다양한 아이템을 시도했었죠.
그러다가 한 일곱여덟 번째쯤 ‘주거’를 테마로 아이템을 기획하게 됐죠. 제가 짧게 영국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집을 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일단 한국은 보증금이 너무 비쌌고, 계약 기간이 1년 단위로 긴 편이었어요. 정보를 얻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런데 이 문제가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외국인 친구들도 비싼 보증금과 경직된 계약 기간에 불만을 갖는 걸 보면서, 이건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 그렇게 시작한 초기 사업 모델은 어떤 형태였나요?
처음엔 외국인 대상 중개 서비스로 시작했어요. ‘리로케이션 서비스(Relocation Service)’라고 하는데요. 집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에 자리를 잡을 때 필요한 것들 이를테면 핸드폰, 인터넷, 비자 같은 걸 원스톱으로 해결해 주는 거죠. 저희는 보증금이 적고 계약 기간이 유연한 매물들을 찾아서 외국인들에게 중개했어요. 그렇게 중개를 하다 보니 임대인들이 “우리 건물도 중개해 주고, 운영도 맡아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위탁 운영을 하면서 청소, 민원 처리 등을 하게 됐죠.

그 과정에서 ‘고시원’, 정확히는 다중생활시설이라는 형태에 주목하게 됐어요. 계약 기간이 한 달 단위로 짧아도 되고, 상업시설에도 설치할 수 있고, 주차 문제도 상대적으로 유연했거든요. 무엇보다 오래된 건물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어요. 역세권이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상업시설이 들어가기엔 조금 난해한 곳들이요. 그런 공간에 고시원이 들어간다면 단기 거주 시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수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 2020년에 처음 1호점을 오픈하셨죠?
네, 정말 최악의 타이밍이었어요. 2020년 2월에 충무로에 1호점을 론칭했는데, 셋째 주부터 국내에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됐어요. 외국인들 사이에서 공포감이 커지면서 예약이 많이 취소됐죠. 그때 제 나이가 만으로 스물여덟이었는데, 그동안 모았던 돈과 대출로 큰 투자를 한 상황이었거든요. 매달 적자가 생기니까 정말 막막했죠. 직원들도 하나둘씩 나가고, 결국 저 혼자 남아서 아침마다 청소하고, 관리하게 됐어요.
그런데 이게 전화위복이 됐어요. 그때 한국 청년들한테도 문을 열었거든요. 원래의 의도는 외국인 기숙사로 기획한 공간이었는데, 한국인들한테도 수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도해 봤죠. 물론 외국인과 한국인이 체감하는 월세의 차이가 조금 있긴 했지만, 수요는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20년에 2개 지점을 내고, 2021년부터 순차적으로 증가해 현재는 60개 점을 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 '픽셀'이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픽셀이라는 게 가장 작은 단위잖아요. 그래서 저는 건물을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걸 하나씩 채우는 게 픽셀이라고 생각했어요. 방을 픽셀로 채운 게 픽셀 하우스고, 픽셀로 여러 콘텐츠를 채워본다면 픽셀타워가 될 수도 있고요. 픽셀타워는 소규모 주상복합 형태를 표방하고 있어요. 서울에는 1980~90년대 지어진 건물이 정말 많아요. 이제 이 건물들의 노후화를 체감하는 시점이죠. 이렇게 노후한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리테일 + 오피스 + 주거를 결합한 형태의 건물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게 목표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픽셀 바이 픽셀로 도시를 다양하게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싶어요.
| 보증금 20만 원, 월세 70만 원이라는 가격이 인상적이에요. 일반 원룸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70만 원에 공과금, 관리비, 가구 렌털, 간단한 아침 식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실질 체감 월세는 50만 원 대예요. 이게 가능한 이유는 노후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초기 비용이 적게 들고, 공간 활용을 효율적으로 하기 때문이에요. 일반 원룸은 베란다와 복도, 주방, 화장실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저희는 공용 주방을 사용하고, 신발장도 바깥에 위치하기 때문에 실제 생활공간은 생각보다 넓은 편이죠.

반면 일반 원룸을 보면 개인 공간은 확실히 보장되어 있지만, 월세는 확실히 비싸죠. 특히 청년들이 출퇴근을 많이 하고, 선호하는 지하철 2·4·7호선 인접 지역은 100만 원은 우습게 나가요. 비용을 아껴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아무리 노후한 건물이고, 유휴 공간이 있다고 해도 "고시원을 하자"라고 건물주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많은 건물주분들이 나잇대가 있으시다 보니, 고시원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은 편이시죠. 게다가 짧게 지내다가 나가는 이용자들이라고 하니 건물이 쉽게 더러워지고 관리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시거든요. 설득이 오래 걸릴 땐 1년이 걸리기도 해요. 그분들이 생각하시는 고시원의 이미지는 예전의 느낌이니까요. 그래서 시공된 모습을 꼭 보여드리려고 해요. 저희는 시공팀도 내부에 두고 있으면서 정말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거든요. 깨끗하게 시공된 공간에 배치된 가구, 시설을 보시면 “오피스텔 같다”라고 많이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설득 끝에 저희가 들어가고 나면 대부분의 건물주분들이 엄청 좋아하세요. 빈 공간으로 두던 건물이 살아났다고 말씀도 해주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