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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에서 중학생 은희는 혼란스러운 가정과 폭력적인 학교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그런 은희에게 한문 학원의 영지 선생님은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이었습니다. "너는 잘못한 게 없어"라는 말 한마디가 은희의 세계를 조금씩 바꿔갔죠. 하지만 영지 선생님은 갑작스럽게 은희의 삶에서 사라집니다. 영화는 끝까지 묻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계에서, 청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2025년 대한민국의 청년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청년 상당수가 일상에서 '어른'의 존재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청년들이 경험하는 '어른의 부재'가 단순히 존경할 만한 롤모델이 없다는 차원을 넘어, 관계 자체가 지속될 수 없는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드러냅니다.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빈번한 이주,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구조적 장벽들은 청년들이 '어른'과 관계를 맺고 쌓아가는 일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관계의 조건들을 다시 상상해야 할까요?


나는 최근 청년의 고립에 대해 인류학 석사 논문을 썼다. 연구 과정에서 만난 ‘고립 청년’들은 각기 다른 삶의 맥락 속에서 실패·좌절·폭력·배제 같은 경험을 겪어왔고, 무엇보다 그러한 경험을 대부분 혼자 감당해 온 경우가 많았다. 고립은 이처럼 힘든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나타난 증상이었지만, 절망의 순간에 함께 버텨줄 신뢰의 관계가 없는 이들이 더욱 쉽게 고립에 놓였다. 그래서 고립은 (새삼 당연하지만) 관계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어른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청년의 시선을 나눠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나는 “요즘 세상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차원을 넘어, 어떤 청년들의 삶에서는 정말로 기댈 수 있는 관계 자체가 얼마나 부족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청년들이 ‘어른’에 대해 느끼는 여러 지표에서 출발하지만, 그 표면 아래 놓인 이야기를 따라가며 청년들이 체감하는 관계적 공백,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함께 질문하고자 한다.
(*이 글은 내가 10월 17일, 교보교육재단에서 주최한 2025 교육 심포지엄 「 어른 없는 사회: 불안의 시대, 어른다움의 길을 묻다」에서 발표한 ‘청년들이 바라보는 어른의 표상’ 내용을 재구성한 글이다. 아래 설문조사 또한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진행했다.)

‘어른 없는 사회’라는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갔다.
“어른은 누구를 말하는건데?”
“그럼 청년은 어른이 아닌거야?”
“난 어른이 있다는 게 뭔지 몰라서, 내 삶에 어른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
“근데… 넌 어른이 되고 싶어? 굳이?”
친구들은 내 삶에 어른이 있냐없냐보다 어른이 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내 친구들이 대부분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이 반응에는 ‘어른’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낯섦과 거리두기, 그리고 무감각이 겹쳐져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청년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까? 지금의 청년 세대는 ‘어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바라보고는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조금 더 보편적인 층위에서 탐색하기 위해 교보교육재단과 함께 전국 19세~39세 청년 4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조사가 간단했지만, 들여다볼 만한 중요한 결과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결과는 청년들이 생각하는 ‘어른다움’의 핵심 가치였다. ‘어른다운 어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을 묻자, 전체 응답자의 약 3분의2가 ‘책임감’을 1순위로 꼽았다. 이것만 보면 ‘좋은 어른=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답변을 나누어보면 성별에 따라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남성은 책임감·능력·지위를, 여성은 경험·지혜·돌봄·배려를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다시 말해 ‘어른다움’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성별에 따라 다른 기대와 역할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런 ‘어른’을 얼마나 경험하고 있을까. “지난 한 달 동안 소통한 사람 중에서 ‘어른’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었는가”를 물었을 때, 무려 34.8%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청년 세 명 중 한 명은 지난 한 달간 가족, 직장, 학교, 동네 등 어느 관계망에서도 단 한 명의 어른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심각한 문제로 고민에 빠졌을 때 의논할 수 있는 어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6%가 ‘몇 명 이상 있다’고 답했지만, 나머지 44%는 ‘거의 없다’ 혹은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위기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사람이 전체의 4할이 넘는 셈이다. 여기에서도 성별 차이가 드러났다. 고민을 의논할 있는 어른이 누구냐는 질문에 남성일수록 부모·직장 상사·학교 선배 등 공적인 관계를 먼저 떠올릴 확률이 높았고, 친구·상담사·목사와 같은 비공식적인 돌봄 관계들을 언급한 건 모두 여성이었다. 이는 공적 관계나 제도적 관계에 대한 신뢰가 여성에게 특히 취약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응답자들이 단지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어른’의 존재를 더이상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어린 시절,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무려 41.5%가 ‘거의 없었다’ 또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기댈 만한 어른과의 안전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지난 한 달간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었다는 비율이 비슷하게 44%인 점을 감안하면, 일부 청년들에게는 성장 과정 전반을 통틀어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거의 부재한 시간이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른’이라는 존재는 필요하다”를 물어본 5점 척도 문항의 평균이 4.13점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어른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했어도, 혹은 지금도 없다고 느끼더라도,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라는 문항으로 넘어가면 평균이 3.65점으로 크게 떨어졌다. 다시 말해 청년들은 어른은 필요하지만, 자신이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은 그 이유로 어른이 될만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안될 것 같다’를 꼽은 비율이 85%나 되었다(남성은 56%). 데이터를 종합해보면 30대 여성은 세대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어른의 부재’를 말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신뢰할 만한 어른을 만나기 어려웠고, 앞으로 스스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확신 역시 낮았다. 즉 생애 전반에서 ‘어른’이라는 관계가 희박하게 이어져 온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30대 여성인 내 친구들이 “어른은 누구를 말하는 건데?”라고 되물었던 반응이 조사 결과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정리하면, 데이터는 다음을 보여준다.
1) 청년이 생각하는 어른다움의 핵심은 ‘책임감’이다.
2) 그러나 어른다움의 기준은 성별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3)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른의 존재를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4) 어린 시절부터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없었던 청년들이 매우 많다.
5) 청년들은 어른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자신이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은 낮다.
6) 특히 30대 여성은 생애 전반에서 ‘어른’과의 관계가 가장 희박한 집단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결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청년들은 왜 ‘책임감’을 어른다움의 핵심으로 상상하는가? 30대 여성은 왜 유독 어른의 부재를 두드러지게 경험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점점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내가 지난 1~2년 동안 연구를 통해 만나온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금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