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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5.11.13
누군가는 축적해야 할 로컬의 진짜 이야기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서진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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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거
#도시/공간
오늘의 질문
우리 동네의 이야기는 어디에 쌓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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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전국 빈집 150만 호, 그중 약 88%가 비(非)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빈집이 남고, 학교가 문을 닫고, 마을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지역이 비어 가는 동안 수많은 지역 활성화 정책은 쏟아지고 있지만 결과는 모두 비슷비슷하죠. 성공 사례를 복붙 하고, 지원금으로 청년을 부르고, SNS에 #로컬 해시태그를 답니다. 그 사이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쌓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괜찮은가요?” 서진영 작가는 질문을 던집니다. 서진영 작가가 강조하는 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축적’입니다. 설문조사나 통계가 아닌,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와 생활 감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그래야 복붙 정책이 아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검색창을 닫아야 비로소 나만의 로컬이 보인다는 것, 모든 세대가 행복해 보일 때 지역이 지속가능하다는 지역의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작은 지면을 통해 말합니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나누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가 보다 멀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기록의 힘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서진영입니다. 저와 어느 시점, 어떤 일로 만나느냐에 따라 제 소개가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작가, 기자, 에디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공통점은 역시나 글을 쓰고 만지는 일을 한다는 것 같아요. 자기소개가 참 어려워서 가끔 챗GPT한테 물어보거든요. “서진영은 어떤 사람이야?” 이렇게요. 챗GPT는 저를 “지역성, 삶, 일상과 여가,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더라고요. 되게 있어 보이죠?

사실 처음부터 지역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고요. 학부에서는 관광개발을 전공하고 석사를 여가학으로 했는데, 관광개발은 장소성에 기반을 두고 있고 여가학은 삶의 질을 들여다보는 분야다 보니, 두 공부가 지금 하는 일에 기반이 된 건 분명히 있어요. 

| 이렇게 ‘지역’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문화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던 사회초년생 때가 그 시작이었어요. 당시 정부나 지자체의 문화정책, 문화사업을 연구·컨설팅하는 곳이었는데요. 저는 회사가 하는 여러 사업들을 콘텐츠로 만드는 출판홍보팀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그러다가 회사에서 진행했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가지고 책을 기획하게 됐죠. 그때가 2007~8년 즈음이었는데, 전통시장에 대해 “지저분하고 불편하다”라는 이미지가 컸을 때였어요. 젊은 문화기획자로 구성된 동료들이 한데 모여 전통시장에 대해 얘기하고, 재미있는 게 많다고 잡지식 탐방기를 냈었죠. 그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장인들, 근대문화유산, 노포 등 지역성을 토대로 한 다양한 서사를 다루는 프로젝트가 연결됐어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공저서 『한국의 시장』과 전국 전통시장을 방문하며 촬영한 장면들 | ⓒ시드페이퍼, 서진영

사실 이런 프로젝트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역은 아니에요. 공공의 수요가 있고 사회적 공감대는 있지만, 선뜻 지갑을 열고 돈이 되는 콘텐츠는 아니죠. 또 지역의 이야기는 지면의 크기도 절대적으로 작아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되도록 많이 얘기하려고 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계속 이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주변을 굉장히 세심하게 살피게 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작업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목을 높여주고 있어요.

| 전원생활교육과 귀농귀촌교육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삶을 전환하려는 목표가 있으셨던 건가요?

흔히들 로컬, 지방 등을 생각했을 때 떠올리는 것들이 있잖아요. 자그마한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고 건강하게 사는 삶이요. 근데 실질적으로 저는 집에 화분도 잘 못 키우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삶을 전환한다기보다는 끝내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공부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또 하나는 제가 수 년째 매달 농업 매체에 기사를 쓰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업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우리가 “먹고살다”, “빌어먹다”라는 말을 자주 쓰잖아요. 이 말들은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인데, 그 기본 형태가 먹는 거거든요. 그런데 미식이나 먹방의 시대를 살면서도 그 원재료들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식량자급률이 50%*가 채 되지 않더라고요. 식량주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고 볼 수 없는 거죠. 일을 하며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이 생겼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 삶은 무엇으로 영근 걸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진짜 내가 원하는 생활이 무엇인지도 되짚어보게 됐고, 현실 감각도 생겼죠. 농업은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배울 생각이 있어요.

* 2023년 기준 식량자급률 49.0%를 기록하고 있다. (2024 농림축산식품 통계연보)

검색창을 닫아야 보이는 나만의 로컬

| 춘천을 기록한 저서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에 6개월 간의 탐방 기록을 담으셨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잠깐 책 소개를 하자면, 로컬씨는 ‘미래에 내가 살 곳을 고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6개월간 도시 한 곳을 탐방하며 기록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나의 거주지 찾기 프로젝트, 춘천 편'이라는 부제가 붙었어요. 2022년에 강원도 춘천문화재단이 범강원권인 고성 소재 출판사 온다프레스에 출간을 제안하며 시작됐어요. 춘천이라는 지역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요. 처음 춘천에서는 마임축제나 인형극제 등 지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축제 요소를 중심으로 책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정말 매력적인가 싶더라고요. 또한 춘천이 정말 살고 싶고, 살기 좋은 도시인가를 확인하는 기본 리서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뭔가를 하는 데 아쉬움이 있었어요. 제가 필자로 참여하며 '담론으로서의 로컬'을 지양하고 '실체로서의 로컬'을 탐구한다는 데 뜻을 모아 청년세대에 좀 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는 책을 만들기로 했어요. 마침 30대, 여성, 1인 가구, 지방 출신 서울 시민이라는 제 상황이 그런 시도를 담아내기에 적절했죠.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의 이주를 고민할 때 어떤 현실적인 조건과 고민이 따르는지를 실험적으로 살펴본 프로젝트였습니다.

| 춘천을 기록하실 때 주거, 교통, 교육 등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셨는데요. 이런 ‘관찰 항목’은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지역 바깥에서 생각하는 지역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미지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도시의 인상이나 속성은 그 도시 골목골목의 분위기나 지역 사람들의 표정, 이야기 속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걸어보겠다고 했어요. 네이버 지도에서 법정동, 행정동 범주를 프린트해서 오늘은 후평1동, 내일은 효자3동 이런 식으로 동네별로 걸었어요. 궁금한 게 생기면 길가는 분 붙잡고 물어보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가 질문하기도 하고, 수소문해서 인터뷰할 분들을 찾기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죠.

저서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와 춘천 곳곳에서 마주한 풍경들 | ⓒ온다프레스, 서진영

관광지가 아닌 삶의 근거지로 바라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 누가 살지”, “어떤 생활문화가 있지” 이런 식으로 주제를 계속 확장했어요. 무엇을 보겠다는 체크리스트가 있지는 않았지만 취재 원칙은 있었어요. 걷는다. 대중교통을 탄다. 그래야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의 감각으로 그 지역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의도가 잘 맞았는지 책이 나온 후 춘천에 계신 분들이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입장에서 본 춘천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 책에서 “도시의 문화가 전(全) 세대에 걸쳐 골고루 누려지고 있는가”를 살만한 도시의 기준으로 제시하셨는데요.

로컬을 이야기할 때 대개 청년이 지역에 없는 게 문제, 청년이 와야 로컬이 살아난다 이런 맥락의 말들을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틀린 말은 아닌데 무엇으로 청년을 불러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단순히 지원금을 줘서 불러들인다는 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많은 지역에서 드러나고 있잖아요.

저는 현재 지역에 계신 어르신들의 역할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르신들이 뭘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청년들이 그분들을 보면서 “아, 이 지역에서 나이 들어도 괜찮겠다. 저 어르신들처럼 여기서 삶을 이어가는 게 되게 좋겠다”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예요. 지속가능하려면 그 관광객이 한 번 오고 말면 안 되는 거잖아요. 또 오고 싶다, 나아가서 나중에 여기서 살고 싶다, 계속 가고 싶다가 돼야 하는 거거든요. 저는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게 보이면 그게 정말 지역의 지속가능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SNS를 보면 ‘#로컬’로 소비되는 콘텐츠들이 있는데요. 이런 콘텐츠는 어떻게 보시나요?

언젠가부터 단순 홍보 목적의 해시태그가 남발되다 보니 로컬이라는 말 자체가 오염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로컬 해시태그가 붙어 있으면 필터링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또간집>을 되게 잘 보거든요. 인상적인 건 로컬을 다루는 방식이었어요. 예고 없이 그 지역에 가서 길에서 만난 사람을 붙잡고 “두 번 이상 간 집을 알려줘”라고 하잖아요. 그럼 사람들은 대부분 “그 집은 유명한 집은 아닌데…”라고 해요. 진행자가 말하죠. “추천받은 집이 맛있으면 이 지역에 또 올 이유가 생기는 거고, 맛이 없으면 다른 곳을 가기 위해 또 이 지역에 올 이유가 생기는 거”라고요.

어느 순간 우리가 어떤 지역을 갈 때 검색부터 해요.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크니까요. 그러는 사이에 내 기준이나 취향은 옅어지죠. 예전에 제천에서 시장 할머니께 맛있는 집을 물어봤거든요. 할머니께서 “메뉴도 다양하고,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집이 있다”고 추천해 주신 가게가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김밥천국이었어요!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할머니의 말씀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음을 알죠. 김밥천국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제천은 저한테 늘 유쾌한 도시가 됐어요.

로컬이라는 말이 오염됐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은 콘텐츠가 잘못된 게 아니라 로컬을 즐기는 우리의 방법론이 변화하고 있는 거겠죠. 나만의 시간과 이야기를 축적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거 아닌가 생각해요.

누군가는 축적해야 할 로컬의 진짜 이야기
누군가는 축적해야 할 로컬의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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