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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2025.10.16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을 여는 우편함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
오늘의 키워드
#건강/보건
#청소년/청년
오늘의 질문
손편지를 쓴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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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공공의 공간은 무엇인가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편지가 나옵니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채로 고민과 답장이 오가는 곳이죠.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소설과 달리 현실의 고민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립·은둔을 생각하는 위기 청년의 규모가 최대 54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료나 상담 등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5.6%에 그치고 있죠.

이렇게 우울한 현실 속에서 삼청동 돌담길 어딘가에 놓인 작은 우편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누군가는 어제 고민을 넣고, 누군가는 오늘 그 고민에 답을 합니다.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위해 1시간 반을 들이고, 전국 110곳에서 매월 3천 통이 넘는 고민을 주고 받습니다. 8년 전, 대학생 한 명이 혼자 시작한 일은 현재 800명이 함께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AI가 3초 만에 답을 주는 시대에, 여전히 종이와 펜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느린 속도로, 하지만 그 속도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만날 사단법인 온기 조현식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삼청동에서 시작된 8년의 여정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온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온기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조현식입니다. 온기는 정신건강 문제를 예방하고 우울감 지속을 완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예요. 대표적인 사업으로 '온기 우편함'이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이 우편함에 익명으로 고민을 보내면 손편지로 답장을 전하는 정서 지원 사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온기 우편함을 시작하게 된 건 제가 대학교 4학년 때였어요. 그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게 됐는데, 그 책에서 과거의 인물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미래의 인물이 답장을 하는 장면을 봤어요. 이런 모습이 우리 현실에도 필요한 게 아닐까, 누군가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또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진심을 전하는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시작한 지 벌써 8년이 지났네요. 

| 온기의 첫 시작이 궁금해요. 어떤 모습이었나요?

 

처음에는 정말 혼자 시작했어요. 책을 읽다가 공책에 우편함 도면을 그려서 목공소에 가서 만들어달라고 했죠. 지금도 그 첫 번째 우편함이 살아있어요. 원래는 나무였는데 지금은 철제로 만들지만, 그때는 작게 만들어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삼청동 돌담길에 직접 제가 이고 가서 설치했어요.

그리고 자원봉사자분들을 모았어요.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보는 스펙업 같은 대외활동, 취업 준비 플랫폼에 "이런 거 하고 싶다, 답장하실 분 10분을 모집한다"라고 올렸죠. 그런데 10명이나 신청해 주셨어요. 저도 깜짝 놀랐죠. 추정해 보건대 누군가의 고민에 대해 답장을 한다는 거에 매력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그때는 공간이 없어서 카페에 음료 시켜놓고 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답장을 썼던 게 시작이었어요. 다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제가 편지 찾아가고, 그렇게 시작했죠.

노트 스케치로 시작한 첫 온기 우편함 | ⓒ사단법인 온기

| 온기의 첫 시작은 삼청동이었네요. 서울시내 한복판에 우편함을 설치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삼청동을 선택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어요. 특정 지역이나 공간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제게는 삼청동이 그런 곳이었어요. 주말이면 차도 많이 없고,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또 돌담길이 있으니까 사람들도 많이 걸으면서 대화도 하고요. 그래서 딱 적당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온기 우편함 설치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서울시 시설 관련 부서와 계속 얘기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셨죠. 갑자기 삼청동에 우편함을 설치한다고 하니까 당연한 결과였죠. 그래서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저희의 취지를 계속 설명했어요. 이익을 창출하는 게 전혀 없다는 것도 강조하면서요. 한 달쯤 지나고 나서 “프로젝트로 해보는 거”라고 하시면서 허락해 주셨어요. 

삼청동에 설치 첫 온기 우편함의 모습 | ⓒ사단법인 온기

| 어렵게 설치한 온기 우편함의 반응은 어땠나요?

첫 번째 우편함을 일주일 만에 열어봤거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50통이 와 있었어요. 그때는 체계가 잡힌 것도 아니라서 홍보도 못 했는데, 정말 많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당시에는 저 혼자 시작해서 자원봉사자분들을 인터넷에서 모집했거든요. 인터넷으로 모집한 10명의 봉사자분들하고 카페에서 음료 시켜놓고, 구석에 앉아서 답장을 쓰던 시절이었어요. 이게 과연 10명의 자원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게 됐고, 우편함에 편지를 주시는 분과 그 편지에 답장을 써주시는 봉사자를 보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한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어요.

| AI가 많은 걸 대신해 주는 시대인데, 역설적으로 손편지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가장 중점을 둔 건 ‘연결’이었어요. 정신건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중에서요. 요즘엔 SNS도 발달되고 AI도 워낙 상용화되고 있지만, 과연 그 안에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SNS에 솔직한 감정이나 어려움을 공유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대면해서 얘기하는 것도 힘든 분들이 있다면 그 중간 어디쯤에 손편지가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희가 보통 손편지 한 통을 쓰는 데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쓰거든요. 받는 분을 생각하면서 정성을 담아서 쓰는 거죠. 그러면 답장을 받는 분도 그 정성을 느끼시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고 느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했을 때 가장 진심을 담아서 서로가 "정말 누군가 나를 응원하고 있구나, 누군가 이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구나"라는 연결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지금도 손편지를 고집하고 있어요.

깊어진 고민을 마주하는 온기 우편함

| 현재 온기 우편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도 궁금해요.

지금은 전국에 약 110개의 온기 우편함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최근에 많이 늘었어요. 편지는 일주일 단위로 수거하는데요. 각 지역에 계시는 우편함 담당 자원봉사자분들이 수거하셔서 저희 쪽에 등기로 보내주시죠. 

편지는 한 달에 보통 2,500통에서 3,000통 정도 보내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늘어났어요. 저희 자원봉사자는 두 그룹이 있는데요. 한 그룹은 오프라인 공간에 오셔서 편지를 쓰는 분들이고, 다른 그룹은 재택으로 편지를 쓰시는 분들이에요. 총 800명 정도 계신데 약 600분 정도가 재택으로 편지를 써주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온기 우편함이 전국에 있고, 편지 쓰기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에서 참여하고 계십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다들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서 어떤 마음으로 쓰시는지 여쭤봤는데요. 오히려 답장을 쓰면서 “나에게 쓰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누군가한테 쓰는 거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내가 위로받고 싶었던,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가 이런 위로를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니까 편지를 쓰면서 위로가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 800명이나 되는 온기 우체부를 어떻게 교육하고 관리하시나요?

지원을 기반으로 선발하는 게 기본 구조입니다. 지원서 제출 후 선발이 되시면 온기 내부적으로 교육과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있어요. 이 교육과정은 꼭 이수하셔야 하는데요. 보통은 저희가 8년 동안 활동하면서 쌓인 원칙들이나 가이드를 드리는 편이에요. 어떤 식으로 답장을 쓰시는 게 맞는지, 어떤 표현은 지양하는 게 좋은지 이런 것들은 공유해요. 예를 들면 “무엇을 하지 마세요”, “00이 정답이니, 이렇게 하세요”같이 명령조는 쓰지 않도록 해요. 초창기에 강요받는 느낌이 이었다는 피드백을 종종 받았거든요. 그래서 경험에 기반한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작성해요.

또 “누구나 하는 흔한 고민이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이런 식으로 고민을 가볍게 치부하는 표현도 쓰지 않으려고 해요.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고민도 처한 상황에 따라 크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걸 가볍게 여기는 표현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온기 우체부 오리엔테이션 | ⓒ사단법인 온기

| 청년들이 유독 편지를 많이 보낸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전체 편지의 약 70%는 2030 청년들이 보내요. 저희도 제일 신기해하는 지점인데요. 사실 요즘 2030은 편지 세대가 아니잖아요.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온라인 병영편지를 쓰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왜 이렇게 청년들이 편지를 많이 보낼까 궁금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편지를 새로운 소통 수단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2030에게 익숙한 건 SNS나 AI인데, 편지가 약간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새로운 소통, 세상에 없던 것처럼요. 청년들의 우편함에는 고지서만 꽂혀있는데 우표가 붙어 있는 편지를 받는다는 게 새로운 경험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온기에 편지를 보내는 요즘 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나요?

온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8년 전과 비교하면 청년들의 고민이 더 깊어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취업을 하고 싶은데 못한다”, “취업이 어려운 이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다”,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이런 고민이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취업 자체가 하기 싫다”, “사회가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밖으로 나가기 싫다”처럼 조금 더 극단에 가까운 고립과 은둔의 편지가 정말 많이 와요.

저희도 이런 편지들에 답장을 드릴 때 상당히 어렵죠. 그럼에도 제일 많이 느껴지는 건 다시 힘을 내고 싶어 한다는 것 같아요. 결국 사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런 의지는 있는 것 같거든요. "나가기 싫다"라고 쓰지만 사실은 진짜 나가고 싶으니까 그걸 쓰는 거죠. 그럴 때는 제일 덜 하기 싫은 거 딱 하나만 해 보기를 권유해요. 작은 거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요.

고민을 가진 온기 님과 온기 우체부가 주고 받는 편지지 | ⓒ사단법인 온기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을 여는 우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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